[여의도포럼-박길성] 소송공화국에서 벗어나려면
입력 2013-11-04 18:22
“고소·고발 남발하던 인천공항공사의 변신은 연대적 공존 통한 갈등 해법 사례 ”
8년 연속 서비스 세계 1위, 2012년 매출액 1조6700억원, 영업이익 8000억원(매출액의 48%), 순이익 5200억원(영업이익의 65%), 단독 대주주인 정부 배당액 1200억원(순이익의 23%), 그리고 올해 유엔 글로벌콤팩 한국지부로부터 영예스러운 노동존중경영상을 받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야기다. 아무리 평가에 인색하더라도 이만하면 지속 가능성 기준에서 볼 때 크게 나무랄 곳이 없는 공기업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이런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잠시 시곗바늘을 10여년 전으로 돌려보면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경영진과 노조는 회사보다는 노동청 조사실이나 법원에서 만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거부하고, 아무런 실리도 없이 반대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무엇이 옳은가는 안중에 없고, 누가 혹은 어느 쪽이 옳은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경직된 진영 논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내분이 끊이지 않는데 수익구조가 좋을 리 만무하고, 공항 서비스 역시 그저 그런 수준이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2년 사법연감에 의하면 1년 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소송 건수가 약 629만건이다. 우리 국민 8명 가운데 1명이 1년에 한 번 송사에 관여하는 셈이다. 소송공화국이라는 불명예의 이름이 붙여질 만하다. 모든 분쟁을 법정에 들고 가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크고 작은 갈등이나 분쟁이 발생하면 법대로 하자고 외치며 소송과 법정으로 달려가는 소송 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가 법에 대해 얼마나 당당한 사회인가를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쟁점을 법원으로 들고 가는 것을 법치주의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아무리 작은 소송 건이라고 하더라도 접수해서 최종 판결이 나는 데까지 최소 15명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의 판단을 사법기관에 맡기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자율적 조정 능력이나 자발적 해결 가능성을 상실한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흔히들 한국사회를 일컬어 갈등의 전람회장이라고 한다. 갈등은 일상화되었으며,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강도는 심각하며,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갈등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역량은 대단히 취약하다. 여전히 밀리면 죽는다거나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구태적인 운동의 논리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본다. 무엇이 단결투쟁의 질곡에서 오늘의 상생화합을 만들었는지 말이다. 이들은 갈등이나 분쟁을 풀어냄에 있어 법에의 의지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법에 의존하면 할수록 화합과는 더 멀어졌다는 것이 갈등과 대립의 시간을 거치면서 구성원 모두가 얻게 된 값진 교훈이다. 법원의 결정에 의한 분쟁의 해결은 미봉에 불과하며 진정성이 담긴 공감적인 화합과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다. 법의 판결인 만큼 강제적으로 따라야 하지만, 공감이 없는데 법의 결정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치주의, 자율주의를 노사관계의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외부 세력에 의해 판단되는 것을 지양했다. 그리고 절충과 타협의 규범을 실행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은 연대적 공존의 가치를 견지한 것이다.
흔히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보면서 고착되어 있다고 여겨진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의외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소송공화국의 갈등 해법을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찾아본다. 상호신뢰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연대적 공존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어내는 근간임을 확인한다.
박길성(고려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