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수진 (5) 팔라우서 선교영웅 대접… 그러나 갑자기 두통이

입력 2013-11-04 17:19


서태평양의 팔라우공화국은 인구 2만명에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다. 2차대전 당시 팔라우 섬 중의 하나인 페릴류는 일본군과 미군이 치열하게 전투했던 장소로 수천 명이 죽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인 노무자들이 만든 다리도 남아 있었다. 이 다리는 ‘아이고 브리지’라고 전해지는데 당시 팔라우 원주민들이 한국인으로부터 들었던 소리가 “아이고 아이고”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팔라우 현지 복음교단 찰스 목사의 도움으로 우리는 주변의 많은 섬나라를 찾아갈 수 있었다. 얍, 이율리픽, 올레아이, 그리고 축섬 등이었다.

1993년 팔라우공화국에 한나호가 들어가자 팔라우 정부는 우리 배를 이용하자고 제안해 왔다. 선거를 앞두고 섬 전체를 둘러보자는 취지였다. 덕분에(?) 연료를 무상으로 공급받았고 팔라우의 섬들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의료와 구제, 복음전파 사역을 벌였다. 점차 팔라우 사역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대통령궁에도 초대받았고 필요하면 언제든 대지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대통령 비서실장과는 언제든 통화할 수 있었고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과는 아침식사도 했다. 정말 선교의 모든 꿈들이 이뤄져가고 있었다. 갑자기 선교의 영웅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는 허전했다. 다시 생각해봤다. 주님은 분명히 팔라우 땅에서 많은 사람들을 부르고 싶으신데 무엇이 문제일까. 한나호에 승선한 게으른 형제들이 떠올랐다. 저들만 변화되면 한나호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주님은 나의 변화를 원하셨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예배를 인도하다 중단해야 했다. 갑자기 현기증과 두통이 몰려왔고 가슴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이윽고 내가 방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몸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을 알았지만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순간 ‘이렇게 천국에 가는구나’ 생각했다.

한나호 형제들에게 인사를 못한 게 아쉬웠다. 선장님과 기관장님 등에게도 미안했다. 다른 상선에 탔더라면 매달 수천 달러를 받으셨을 분들인데 한나호에서 고생만 하신 것 같아 죄송했다. 아내에게는 사랑 표현도 못하고 떠나는가 싶었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졌고 후회가 몰려왔다. 나의 뇌리에는 마치 10개 이상의 TV를 동시에 보는 것처럼 과거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청년 때의 방황과 부르심의 감격, 선교사로 헌신한 뒤 매일 기도하는 모습, 후원자들과 기도 동역자들, 그리고 홀어머님.

하지만 천군천사는 오지 않았다.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천국 가는 것도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적극적이어야 하는 줄 알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천군천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의 장례식이 보였다. 신학교 동문들이 찾아와 “신학교 때부터 배, 배 하더니 배에서 죽었네, 박 선교사”하며 슬퍼했다. 후원자들이 와서 우셨고 큰형님과 어머니도 보였다.

그런데 장례식에는 한나호에서 온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 단장! 나는 당신을 대표로는 인정하지만 목사나 선교사로는 인정 못해. 당신은 사랑이 없는 선교사야.”

나와 함께 생애를 걸고 선교사로 나온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기도가 나왔다. “주님, 한번만 살려주세요. 잘할게요.” 애타는 절망 속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수진아, 천국은 말이야 사랑으로 한 것만 계산된단다.”

“예? 사랑이요? 난 열심히 배를 가지고 죽기 살기로 했는데요.” 그리곤 깨어났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