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 한평생 꽃비가 내린다… 한국화 대가 박대성 화백 개인전 ‘원융(圓融)’

입력 2013-11-04 17:01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소년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에게 부모를 잃었다. 자신도 왼쪽 팔이 잘렸다. 다섯 살 때였다. 할아버지 밑에서 초등학교는 겨우 마쳤지만 ‘병신’이라는 놀림을 받기 싫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방에만 처박혀 살았다. 집안에 있던 병풍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놈 솜씨가 제법인데?” 친척들의 칭찬에 용기를 얻어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평생 동안 수묵화 작업에 매달리는 한국화가 박대성(68) 화백의 얘기다. 그의 호는 소산(小山). 대성(大成)이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해 늘 자신을 낮추고 살라는 의미로 할아버지가 지었다.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고행의 길을 걸어온 그는 1970년대 국전에서 입선과 특선 등 여덟 번이나 수상했고, 79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으며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색채가 난무하고 수묵이 외면당하는 미술계에서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작품은 호평과 함께 판매도 잘 됐다. 인기작가로 우뚝 솟은 1994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추상화·크로키·수채화를 공부하다 경주 불국사가 불현듯 떠올라 1년 만에 귀국했다. 곧바로 경주로 달려갔다. 밤새도록 달을 구경하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그는 “신라의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때 그린 대작 ‘불국 설경’은 이듬해 전시장에 걸려 “그림에서 광채가 난다”는 반응을 얻었다.

이후 경주 남산 자락의 솔숲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그의 대규모 개인전이 2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막힘없는 소통과 조화를 뜻하는 ‘원융(圓融)’이라는 타이틀로 경주를 배경으로 한 수묵화와 도자기 그림에 글씨를 쓴 ‘고미(古美) 등 50여점을 내놓았다. 길이 8m의 신작 ‘불국 설경’도 출품됐다. 도자기를 병풍에 그린 작품에는 난생 처음 색을 칠했다.

그의 그림은 서예의 필법을 바탕으로 한다. 지난 주말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붓을 잡을 때 중심을 흐트리지 않는 중봉(中峰)을 체득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면서 “중봉이란 소리꾼들이 득음을 하듯 ‘태풍의 눈’ 한가운데로 마음과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만 작가의 예술세계를 관람객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한지 대신 빛이 희고 결이 고운 중국의 전통 종이인 옥판선지(玉版宣紙)에 그림을 그린다. 한지보다 물기가 훨씬 빨리 번지는 탓에 붓끝에 내공을 실어 한 번에 망설임 없이 그리지 않으면 그림 전체를 망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의 붓놀림은 그칠 것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붓글씨를 쓰며 필력을 키운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작업 중에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무료 그림 강좌를 6년째 진행하고 있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 이후 우리 것을 잃고 왜색으로 변질돼버린 수묵화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다. 초지일관 수묵 작업에 매진한 노력이 결실을 거둬 내년 가을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 그의 이름을 내건 시립미술관이 문을 연다. 그는 “이젠 수묵 전문가를 떠나 자유롭고 싶다”며 웃었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