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정원교] 왜 천안문을 향했나

입력 2013-11-03 18:33


스모그가 짙게 내리 깔린 지난 1일 오전 천안문 바로 앞. 단체 여행객들이 천안문 안쪽에 있는 고궁(故宮·자금성) 참관을 위해 무리지어 이동하는 모습에서는 불과 나흘 전 충격적인 테러가 있었다는 걸 느끼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천안문 앞 인도 좌우편에는 접근 차단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이곳에서 행인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했다. 천안문 광장 등에 배치된 검정 무장경찰 차량은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테러 차량이 돌진했던 외금수교(外金水橋)에도 ‘상흔’은 남아 있었다. 다리 앞쪽 돌난간이 떨어져 나간 게 가려놓은 화분 사이로 선명하게 보였다. 외금수교는 천안문 앞 인도와 천안문 성루를 잇는다. 테러 차량이 충돌했던 다리로 당초 알려졌던 ‘금수교’는 고궁 안에 있다.

외금수교 다리는 5개로 천안문 성루 밑에 난 문 5곳과 연결된다. 이 가운데 마오쩌둥(毛澤東) 대형 초상화 바로 밑 중앙의 문과 이어지는 다리는 폐쇄돼 있다. 문제의 차량이 부딪힌 외금수교는 5개 가운데 중앙 바로 오른쪽에 있는 다리였다. 중앙 다리를 통과해 마오쩌둥 초상화를 향하고자 했으나 긴급 상황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성루에서 전 세계를 향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했던 마오쩌둥 아니던가. 성루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대단결 만세’라는 구호도 걸려 있다. 그러니 이곳이야말로 ‘신중국’의 상징 그 자체다.

중국이 군대를 동원한 테러 척결을 선언한 것은 현 지도부가 이번 사건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잘 보여준다. 그들은 신장(新疆) 위구르족이나 시짱(西藏) 티베트족 문제를 느슨하게 다뤘다간 다른 소수민족 지역에서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에 따라 신장과 티베트를 국가의 ‘핵심 이익’이라며 다른 나라는 간섭하지 말하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들은 티베트 문제를 섣불리 건드렸던 프랑스와 영국이 허리를 굽힌 데 대해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것일까. 한 외국 언론인은 “국력이 융성한데도 스스로 힘을 자제한 예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지금과 같은 강압 정책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알기 어렵다”고 여운을 남겼다.

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