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형제, 10년 만에 앞다퉈 계열사 주식매입 왜?

입력 2013-11-03 18:25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형제 간 지분경쟁이 최근 재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신격호(91)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59) 일본 롯데 부회장이 롯데제과 주식을 잇달아 매입하면서 동생 신동빈(58) 한국 롯데 회장과 물밑 경쟁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두 사람은 2003년 이후 계열사 주식을 사들인 적이 없다.

다만 롯데그룹에서는 ‘형제의 난’이 벌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한다. 신 총괄회장이 절묘하게 형제의 지분을 배분해 분쟁이 일어나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 형제의 최근 행보를 보면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이 설득력을 갖는다. 먼저 계열사 주식을 매입한 사람은 신 회장이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1월 롯데푸드 지분을 1.96%로 늘렸고, 5월에는 롯데케미칼 6만2200주를 사들여 보유 지분을 0.3%로 높였다. 6월에는 롯데제과 6500주와 롯데칠성 7580주를 잇따라 매입했다. 지난 9월 9일부터 13일까지는 롯데손해보험 주식 100만주(1.49%)를 매집했다. 올해에만 롯데푸드,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의 주식을 사들인 것이다.

일본 롯데를 책임지고 있는 신 부회장은 롯데제과 주식 매입에 집중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달 15∼17일 롯데제과 주식 577주를 매수해 지분율을 3.57%에서 3.61%로 높였다. 지난 6월에도 롯데제과 주식 6500주와 롯데칠성음료 주식 7580주를 사들였다. 8월과 9월에는 롯데제과 주식을 각각 643주, 620주씩 매입했다. 이에 따라 3.4%대였던 신 부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은 0.21% 포인트 높아졌다.

신 부회장과 신 회장은 2003년에 각각 롯데제과와 롯데칠성 주식을 사들인 후 최근까지 단 한 번도 계열사 주식을 매입한 기록이 없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지분 매입경쟁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 롯데의 사업 규모가 일본 롯데보다 10배 이상 큰데도 한국 롯데를 책임지고 있는 신 회장이 일본 롯데를 맡고 있는 신 부회장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할 만큼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점도 불안 요소다. 한국 롯데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82조원으로 5조9000억원인 일본 롯데보다 13배 이상 크다. 1948년 창업 이후 제과업 위주로 운영된 일본 롯데와 달리 한국 롯데는 1967년 설립된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유통·호텔·건설·화학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한국 롯데는 총 77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상장사는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등 8개뿐이다. 그룹 매출의 30% 정도를 담당하는 롯데쇼핑을 두고 43개 계열사들의 지분구조가 얽히고설켜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롯데쇼핑의 최대주주는 신 회장으로 13.4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 부회장 지분도 13.45%에 이른다.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경우 우호지분에 따라 얼마든지 대주주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 사후에도 일본 사업은 신 부회장, 한국 사업은 신 회장이 맡는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두 형제가 한국 롯데의 핵심인 롯데쇼핑의 지분을 비슷하게 소유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롯데 지분도 나눠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는 “일본 롯데의 지분도 두 형제가 비슷하게 점유하고 있어 한쪽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 총괄회장이 두 형제에게 약간의 비교우위만 줘도 상호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조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두 형제가 각자의 사업 영역에서 활동하도록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구조가 만들어져 있고 분명하게 교통정리도 돼 있다”면서 “신 총괄회장 사후에도 그룹 차원의 조정이나 형제간 지분 다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