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부실 CP는 목숨 빼앗은 사기”… 피해자들 청계천로 빗속 집회·항의

입력 2013-11-03 18:16

“돈도 모자라 목숨까지 뺏어가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2일 정오 ㈜동양이 들어선 서울 청계천로 시그니쳐타워 앞에는 섬뜩한 글귀의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펼쳐진 검은 현수막 주변으로 검은 옷을 입은 시민 500여명이 모여들었다. 동양증권의 동양 계열사 기업어음(CP)·회사채에 투자한 피해자들이었다. 이들은 동양증권의 계열사 채권 판매가 불완전판매뿐만이 아닌 사기행위라고 거듭 주장했다.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더 죽어나가야 양심선언을 하겠느냐!” 가랑비 속에서도 좀체 자리를 뜨지 않던 한 집회 참여자는 “하늘도 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그룹의 부실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1개월 만에 전국 단위로는 3번째로 열린 이날 집회에서 동양그룹 채권 피해자들은 검은색 복장을 착용하기로 약속했다. 한 투자 피해자가 실의에 빠진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동양그룹 피해자들이 개설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돈까지 동양그룹의 부실 CP에 투자했던 30대 여성이 남편과 자녀를 남겨둔 채 지난달 18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공분을 자아냈다.

이 자살이 실제 사건인지는 아직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국민일보는 최초로 글을 올린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해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강원 원주경찰서는 지난달 18일을 전후한 30대 여성의 자살 사건이 없다고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풍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투자 피해자들의 분노와 피로가 가중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난 1일에는 마산 지역 동양그룹 투자피해자 대표가 서울 을지로2가 동양투자금융빌딩 옥상에 올라 투신 소동을 벌였다. 그는 동양증권 직원과 폭행 시비에 휘말려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답답함과 화를 참지 못한 나머지 손목을 자해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사람도 있다.

집회 현장에 있던 한 투자자는 “나도 유서를 써서 가지고 다닌다”며 “가족과 정을 떼려 짐짓 노력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남편이 힘들게 번 5000만원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돼 자살하고 싶다”는 피해자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에는 “아무리 큰 돈이라도 목숨이 더 값지다”는 위로의 댓글들이 달렸다.

2011년 발생한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들도 여전히 싸우고 있듯, 동양그룹 채권 피해자들도 당분간 지루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국정감사장에서 투자자 피해 구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지만 투자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희망을 갖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분쟁조정과 개인적인 소송 가운데 불완전판매 구제책을 택일해야 하는 투자자들에게는 확실히 참고할 만한 지표가 없다. 법원은 20∼50%가량을, 금감원은 30%가량을 되돌려준다는 막연한 정보가 전부다. 이마저도 원금이 아닌 손해액(투자액에서 회수액을 제한 금액)의 배상 비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쟁조정은 신속하긴 하지만 이쪽이 유리하다고 권유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