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너무 조용했던 안철수씨
입력 2013-11-03 18:29
18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작년 이맘때만 해도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우리 정치인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는 인물이었다. 무소속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는데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자주 추월했다. ‘2030’세대의 표심이 압도적으로 그를 향해 있었고,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이 들불처럼 번졌다.
그랬던 안 의원의 존재감이 1년 사이에 확 변했다. 지난봄 노원을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뒤 그의 ‘유명세’는 오히려 뒷걸음질을 쳐왔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야당인 민주당은 단 한 번도 ‘조용한 하루’를 보낸 적이 없었다. 새 정부의 각종 문제점을 물고 늘어져 항상 뭔가 소란스런 소음을 냈다. 3, 4월엔 ‘인사 참사’를 문제 삼았고, 5월부터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을 매개로 지난 대선의 불공정성을 집중 제기하며 장외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이런 정치공세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온 관심을 쏟았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직접 대결하는 구도가 여의도를 지배하면서 오히려 가장 많은 국회 의석을 가진 새누리당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당연히 안 의원의 입지가 생길 여지도 수축될 수밖에 없었다.
경영학자들은 정치를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본다. 어떤 주제라도 특정 정치세력이 쉬지 않고 떠들면 세인(世人)들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이 연예인이 더 유명해지기 위해 스캔들과 루머 터뜨리기를 불사하는 태도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수개월 동안 정치인으로서 안 의원이 보여준 행보는 이런 가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독자적인 목소리가 부족했고, 정치 현안에 관한 주견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무소속 1인 국회의원’으로는 거대 여야 정당의 아성을 깨는 일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과연 안 의원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해보기나 한 것이냐”는 혹평을 내놓는 이도 있다.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런 용기를 보여줬다면, 그의 지지기반이 넓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랬던 안 의원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철수당’의 창당 프레임과 일정 등과 관련한 사항들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세불리기도 어느 정도 진전된 듯하다. 정치권에서 “과연 그 당이 만들어지기나 할까” 하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 시점에, 그는 지난해 대선 전후의 기세를 펼 요량이다. 창당 작업 과정에서 안 의원은 또 다른 부담을 안아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가 새누리당·민주당과 어떻게 다른지, 그 가치가 기존의 ‘여의도 정치판’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1992년 미국 대선에 출마했던 무당파 로스 페로 후보는 워싱턴의 프레스클럽 연설에서 “매일 보는 게 의회와 백악관이 애들처럼 서로 손가락질하고 싸우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를 무기로 페로는 미국 선거 역사상 무소속 후보로는 처음으로 18.9%의 득표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4년 뒤 선거에선 완전히 몰락했다. 페로는 현대적 의미의 유권자란 아무리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하더라도 정치인의 운신에 따라 하루아침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잠재적 적(敵)이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항상 ‘정치적이지 않은 정치인’으로만 남으려 했다.
창당 작업에 착수한 안 의원에게 페로의 행로는 반면교사(反面敎師)처럼 보인다. ‘조용한 안철수씨’로 남을지, 아니면 기성정치가 깜짝 놀랄 ‘강력한 정치인’으로 거듭날지 하는 선택의 순간이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