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종원] 하락하는 미국정부 신뢰

입력 2013-11-03 17:35


다문화사회인 미국에서 정부 신뢰는 정부 역량을 결집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특히 요즘처럼 급변하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정치경제 환경 속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건강보험법과 이민법 개정, 정부부채 비율 상한 등 여러 개혁 과제는 정부와 의회 간, 의회 내 정파 간 탁월한 정치력이 조화롭게 행사돼야 해결된다. 이를 어느 정도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초적 지표가 국민 여론이고 정부에 대한 높은 신뢰다.

그럼에도 요즘 미국 정부의 신뢰는 바닥이다. 퓨 리서치센터는 10월 16일자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의 19%만이 미국 정부를 신뢰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1958년 정부 신뢰도가 73%에 이른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의 오바마 케어와 정부부채 확대를 둘러싼 오바마 정부와 공화당 하원 간 충돌로 연방정부가 셧다운에 이른 과정을 볼 때 다수 국민들이 가지는 분노의 정도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수치는 지난 2011년 8월 정부채무 상한을 두고 의회 내 대립이 격화되어 있을 때와 같은 수준이란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계속 하락해 왔지만 19%라는 수치는 금년 1월보다도 7%포인트나 하락한 결과다.

정부를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 하는 문제는 개인이 가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민주당원은 현 오바마 민주당 정부에 대해 41%가 호의적이었던 반면에 무당파는 27%, 공화당원은 13%만이 현 정부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원보다는 공화당원이나 공화당에 기운 사람들이 현 민주당 주도의 연방정부를 더 낮게 신뢰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소위 티파티(Tea party) 그룹은 고작 3% 정도만 연방정부를 신뢰한다니 정치적 견해차가 정부에 대한 신뢰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미국인들의 의회에 대한 평가도 매우 낮다. 퓨 리서치 센터의 다른 조사는 자그마치 73%의 사람들이 의회에 대해 비우호적임을 드러냈다. 정부기관 간 신뢰도 비교에서도 의회가 23%로 연방정부의 질병통제센터, NASA(미국항공우주국), 국방부, 보훈청 등과 같은 기관들이 기록한 70% 이상의 높은 신뢰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는 의회에서의 정책 교착이 미국 정부신뢰 하락의 큰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아직 미국 국민의 58%가 미국 정치체제의 건전한 작동을 믿고 있으며, 의원들이 문제라고 답한다니 정치체제 수준의 정치 개혁에 대한 전망을 다소 어둡게 만든다. 이런 추세는 2010년 이후 계속되고 있다.

한편 개혁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연방정부가 주정부나 지방정부보다 국민으로부터 더 신뢰를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데 조사 결과는 이와는 아주 딴판이다. 3월 중순 조사에서 국민들 28%만이 연방정부에 대해 아직 호의적으로 평가하는데 반해 지방정부는 63%, 주정부는 57%가 우호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락 추세는 인정하더라도 연방정부 신뢰도가 다른 정부의 거의 절반밖에 안 된다는 것은 매우 우려된다. 낮은 신뢰는 연방정부 정책들이 지방의 어젠다보다 정책적, 이념적 갈등 가능성과 정책추진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겠지만 낮은 신뢰 자체가 정책 추진 자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 까닭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퓨 리서치센터의 10월 16일 조사에서 연방정부에 대해 화가 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역대 최고 26%를 넘어 30%까지 치솟았다. 주로 공화당 성향이긴 하지만 어려운 경제, 유색인 이민자와 불법체류자들, 다문화 갈등, 비싼 의료비 등 짜증나게 하는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 마이클 키멜의 ‘화난 백인 남성’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사회학자 키멜은 대공황 때 술집과 보디빌딩 업종이 호황을 누렸다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는 향후 미국에서 전반적 정부신뢰 상승과 연방정부 정책 추진의 원활함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이종원 가톨릭대 행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