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나래] 힐송 처치

입력 2013-11-03 17:35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뮤지컬의 본산이다. 그곳에서도 중심부 토트넘 코트로드 역 앞에 있는 도미니언 시어터(Dominion Theater)에서는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공연이 한창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Queen)의 노래 24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로, 2002년 첫선을 보인 뒤 강렬한 ‘록 스피릿’을 보여주며 10년 넘게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오른팔을 치켜들고 왼팔에 마이크를 잡고 있는 극장 입구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동상은 이 극장의 랜드마크다.

하지만 일요일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극장 밖에는 ‘힐송(Hillsong) 처치’ 플래카드가 나붙고, 네 차례 예배가 진행된다. 호주에서 시작된 힐송 처치 사역자들은 1999년 런던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초창기 웨스트엔드의 이 극장, 저 극장을 옮겨다니다 2005년 1월 극장주의 협조를 받아 이곳에 정착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6시 예배 때도 어김없이 극장 2층 뒤쪽의 어퍼 서클과 발코니석까지 2200석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졌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가 영향력을 잃어가면서 많은 영국인이 가톨릭 교회로 회귀하거나 아예 신앙을 버리고 사는 쪽을 택하고 있다. 런던은 유럽에서도 가장 세속화된 도시로 불린다. 일요일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 예배드릴 만한 장소를 찾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지난달 25일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만난 스위스 작가 알랭 드 보통과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한때 과격한 무신론자의 길을 걸었고 여전히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종교가 우리 삶에 주는 장점을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적용할까 하는 고민을 담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을 썼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신앙 안에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 안에 뭔가 결핍돼 있다고 느끼는 걸 보고 있으면 슬프다. 과거 종교가 보듬어 안아주었던, 그러나 지금은 종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우리 인생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조금 더 창조적일 필요가 있다.” 그가 ‘치유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하고 문화와 예술에 주목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힐송 처치는 런던에서 몇 안 되는, 예배를 통한 삶의 위안이 이뤄지는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넘쳐나는 서울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됐다.

런던=김나래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