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마샤두 지 아시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창비)
입력 2013-11-03 17:16
대륙이 움직이던 시대가 있었다.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갓 독립한 1820년대도 그런 시대였다. 대륙 전체가 자유를 향해 한 발짝 더 움직였다고나 할까. 이는 남미라는 대륙 내부에 존재했던 또 다른 신대륙의 발견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라면 무릇 대륙에서 대륙이 갈려나온 시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으리라.
브라질 소설가 가운데 최고봉으로 꼽히는 마샤두 아시스(1839∼1908)가 그런 작가이다. 아시스는 대전환기의 시간적 배경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선 인물인 브라스 꾸바스를 화자(話者)로 내세운다. 꾸바스는 도입부에서부터 1869년 6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아시스가 의도적으로 1805년 태생인 화자에게 ‘사후 회고록’을 작성케 함으로써 대륙이 움직이던 시대를 촘촘히 짚어가기 위함이다. “어쨌든 나는 1869년 8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2시에 나의 아름다운 까뚱비 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시 나는 64세로 그 세월은 험난하면서도 화려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독신이었고 약 300꽁뚜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열한 명의 친구들이 나의 무덤까지 따라왔었다.”(17∼18쪽)
‘사후 회고록’이라는 형식 자체가 문제적이다. 작가는 저승에서 이승의 삶을 회고함으로써 타성에 젖은 독자들의 관습적 사고를 비꼬고 흔들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 사회와 세계, 나아가 우리의 삶 자체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롭게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화자는 부친에 의해 강제로 포르투갈로 유학을 떠나고 대학 졸업 후 유럽을 돌아다니던 중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후 결혼과 연방하원의원 출마를 권유받으면서 겪는 좌절과 상실 과정은 노예부터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조명하면서 근대적, 전근대적 생활양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한편으로 당대 현실을 다루면서도 과감한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어 고전(古典)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박원복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의 국내 초역.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