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공동체 같은 영성이 필요하다
입력 2013-11-03 17:19
경건성·헌신·열정, 한국 사회와 교회가 본받아야
“교회의 기초는 신조가 아니라 경건에 있다.” “나에게는 단 한 가지 열망밖에 없다. 그것은 예수님, 오직 그분뿐이다.”
독일의 경건주의자로 헤른후트의 모라비안 공동체를 이끈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진젠도르프(Zinzendorf·1700∼1760)의 말이다. 교회사가로 부흥운동에 정통한 박용규 총신대 교수는 지금의 한국 사회와 교회가 배워야 할 독일의 영적 지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진젠도르프를 꼽았다. 그의 깊은 경건성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헌신, 선교에 대한 열정은 한국 교회와 사회의 부흥을 위해 절실한 주제라는 설명이다.
헤른후트(Herrnhut)는 독일과 체코,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인구 1200여명의 마을. 이곳의 영주였던 진젠도르프 백작은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경건한 복음주의자들로 18세기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헤른후트에 정착한 모라비안 교도들과 형제단을 만들어 근대 독일의 영적 각성을 이끌었다. 헤른후트는 ‘하나님의 피난처’ 또는 ‘하나님의 오두막’이란 뜻.
1727년 진젠도르프가 이끄는 모라비안 공동체 가운데 큰 부흥이 임했다.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을 통해 이들 공동체는 자신들의 생명을 가장 귀한 일에 바치기로 다짐한다. 신앙의 경건성이 교회 내뿐 아니라 사회로 흐를 수 있도록 일상에서 희생적 삶을 살았으며 전 세계를 향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1728년 진젠도르프와 형제단들은 서인도와 터키 등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결의, 4년 후 두 명의 선교사를 서인도 제도에 파송했다.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들이다. 이후 독일 남부와 스위스, 발트해 연안, 러시아, 북미 등 전 세계로 선교의 지경을 넓혀 나갔다. 18세기에 226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했다. 이들은 선교지로 가면서 자신들의 관을 짜가지고 갔다. 선교지에서 삶을 바치겠다는 결의였다.
가을의 헤른후트는 무척 아름다웠다. 마을 전역에 깊은 영적 분위기가 흘렀다. 헤른후트는 마을 내에 제대로 된 빵집이 하나뿐일 정도로 작았지만 그곳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역사는 크고도 넓었다.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에서 이들의 선교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박물관 안에는 18세기의 작은 마을에서 전 세계를 품었던 모라비안 형제단들의 선교 상황을 알려주는 다양한 기록과 전시물이 있었다. 복음을 위해 강과 바다, 산을 건넜던 빛바랜 사진들, 개썰매를 타고 그린란드의 빙하를 헤치고 갔던 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한 가지의 열망이 없다면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일들을 헤른후트 사람들은 믿음 하나로 이뤄냈다.
마을 중심에 모라비안 형제교회가 있었다. 외양은 아름다웠지만 내부는 별다른 치장이 없는 소박한 예배당이었다. 특징적인 것은 의자와 단상을 비롯해 교회 내부의 모든 시설이 흰색이라는 점이었다. 순결하고 경건한 신부의 모습을 상징했으리라 여겨진다. 복음을 통한 사회 개혁의 실천을 위해선 구호와 신조가 아닌 경건이 선행돼야 한다는 그들의 의지가 흰색에 투영되어 있었다.
마을 내 ‘하나님의 영지(Gottesacker)’라 불리는 모라비안 교회 묘역에 있는 진젠도르프 무덤에 가 보았다. 무덤까지 올라가는 도중 두 갈래로 길이 갈라져 있었다. 오른쪽이 진젠도르프 무덤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 모두 앞에는 지금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는지 모른다. 한쪽은 번영의 길이다. 모두가 그 길로 가길 원한다. 다른 한 길은 경건한 희생의 길이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진젠도르프는 19세에 뒤셀도르프에서 이탈리아의 화가 도메니코 페티의 작품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에 묘사된 예수 수난 장면의 그림을 보고 평생 주님의 십자가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자신 앞에 놓여 있는 번영의 길을 과감히 버리고 대중이 가지 않았던 ‘그 길(The Way)’을 걸어갔다. 부르심에 순종한 길이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해 선교의 새 역사가 시작됐으며 복음을 통한 사회변혁의 꿈이 전 세계로 퍼져갔다. 차가운 이성과 자율의 시대 속에서 ‘풀이 죽은’ 18세기 사람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뛰어넘는 영적 다이내믹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작은 마을 헤른후트의 부흥은 독일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감리교 등 교회의 부흥을 이끌어냈다.
지금 21세기 한국 땅에도 풀이 죽은 수많은 사람이 있다. 아픈 청춘들, 더 아픈 중년과 노년들에게 무덤 속 진젠도르프가 말하는 듯하다. “이 사람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분과 걸어가십시오. 가장 귀한 일, 영원한 가치의 일에 당신의 삶을 투자하십시오.”
헤른후트=글·사진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