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반대위해 촛불든 그들은 누굴까… 대책위 상임위원장 등과 심야토론
입력 2013-11-01 23:36
[미션톡] 31일 밤 벡스코 앞 도로변에 수십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가던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들은 WCC에 반대하는 기도회를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었다. 30여명의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WCC총회 안팎을 묶고 있는 사탄의 영이 풀어지게 해달라”고 큰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 벡스코 주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찾아와 “며칠이고 계속 이러니 시끄러워 잠을 못자겠다”고 항의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도 밤늦게까지 WCC 총회장 주변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이 나름대로 절실해 보였다. 사실 국민일보 독자들 중에는 WCC 부산총회에 반대해 이를 자세히 보도하는 것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과연 WCC가 이야기 하는대로 오해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기도회가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집회를 인도한 WCC대책위 상임위원장 송춘길 목사와 고신대 영문과 김경철 교수를 가까운 카페에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눴다. 반대 입장을 듣기 위해 기자는 WCC의 상황과 입장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야밤에 벡스코 앞에서 기도하는 당신들은 누구인가.
“누가 동원한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으로 모였다. 주님이 보내신 이들이라 생각한다.”
-WCC총회를 몸으로 막을 것인가.
“우리는 평화롭게 예배를 드릴 뿐이다. 경찰도 우리처럼 질서정연하게 반대집회를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WCC가 진짜 사탄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는가.
“사탄의 모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WCC 참여자들을 모두 대적하거나 배척하는 게 아니다. 부산총회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도 대다수는 WCC의 신학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내가 스위스 제네바의 WCC본부에 찾아갔을 때 거기 직원들도 WCC의 신학을 모르고 있더라. 우리는 WCC의 문제점을 알려서, 사람들이 빠져나오게 만들고 싶다. 주님이 WCC 참가자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기를 기도하고 기다린다.”
-WCC 안에는 자유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어떤 면에선 한국 교회보다 더 보수적인 교파도 있다. 한쪽만 보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WCC반대 집회에도 일부 이단 세력이 참여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반대 집회하는 이들을 다 이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단에서 참여한 이들은 집회장에서 나가라고 한다. 배척한다. 하지만 WCC는 종교다원주의도 포용한다. 그것이 문제다. WCC가 오히려 우리 안에 이단이 있다며 우리를 싸잡아 비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7대종단협의회에 참여한다. 한기총 목사님들이 스님과 같이 앉았다고 해서 혼합주의라고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WCC가 총회라는 가장 큰 잔치에 타종교인을 초청한 것을 두고 타종교와 혼합했다고 하는 것은 억측 아닌가.
“‘예수만이 그리스도’라는 우리의 신앙까지 내려놓고 대화를 하는 것이 문제다. 전세계 교회가 모였는데 대화 주제가 모두 사회운동과 관련된 것뿐이다. 사회구원만 말한다.”
-WCC가 전 세계 교회의 모임이다보니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교회가 활동할 것인지 논의하다보면 사회적 문제가 주제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도 노숙자를 돕고 북한 주민을 지원하는 사회적 활동을 한다.
“다양성 안의 일치라는 말을 WCC가 강조하는데, 그 표현부터 잘못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순결한 일치(unity in purity)를 추구해야 한다. 복음을 위한 사회적 활동이 돼야 하는데 사회 운동 자체가 신앙이 될 순 없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니 세상 속에서 섬김의 활동을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은 성도들이 사회에서 하는 사역이다. 진리의 울타리까지 허물면서 사회운동을 강조해선 안된다.”
-WCC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진리의 울타리를 허물고 종교혼합주의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나.
“예수만이 그리스도이고 구원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반대하지 않겠다.”
-김삼환 대표대회장도 환영사에서 ‘오직 예수’를 말했고, WCC도 그렇게 고백한다.
“WCC의 신학을 기초한 신학자들의 글을 잘 살펴보면, 이들은 이중언어를 쓰고 있다. 말로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예수 말고도 그리스도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WCC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와 신학자들도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 분들이 다 분별력이 없다는 것인가.
“그 점도 문제다. WC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몇몇 목사가 앞장서니 우루루 따라가는 교권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목사가 중심이 되어선 안 되고 진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 한기총도 WCC총회를 찬성했다는 점에서 진리를 팔아먹은 셈이다. 28일 집회에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모두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들이다. 교권주의에 물든 교회가 이제는 새로워져야 한다는 열망을 가진 성도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증거다. 우리는 상당히 고무됐다.”
-WCC의 중심이 되었던 서구 교회의 신학자들이 제국주의에 동참했던 교회의 역사를 반성하다보니 기독교를 상대화하는 주장이 제기된 면이 있다.
“WCC의 중심에 그런 상대주의적인 인식론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버리면서 남과 대화하겠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절대주의다.”
-사실 상대주의적 인식론은 철학계에서도 점점 비판을 받고 있다. 내 안에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남과 대화하겠는가. 대화를 하려면 내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신학은 흑백에 치우친 서양식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타종교와 대화를 한다거나 다종교 사회에서 진리를 지키는 문제를 의논할 때에는 교회에 동양적 사고방식이 더 필요할 것이다. WCC도 최근에는 서구식 사고에 의존한 신학을 반성하면서 남미와 아프리카·아시아에서 부흥하는 오순절교회와 복음주의 신학을 포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부산총회에서도 울라프 픽쉐 트베이트 총무나 월터 알트만 중앙위 의장의 보고를 보면 그런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WCC를 비판하는 분들도 WCC 안에 들어가서 이런 점을 가지고 대화를 하면 좋지 않겠는가.
“WCC는 타종교와는 대화를 하자면서 정작 벡스코 주변에 24시간 집회신고를 해놓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집회도 하지 못하게 막았다.”(한국준비위는 한기총이 반대집회 계획을 발표하자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벡스코 주변에 먼저 집회신고를 했다. 실제로 WCC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김용복 전 한일장신대 총장 같은 분들은 “WCC가 복음주의 교회와 대화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WCC 총회가 앞으로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
“WCC가 끝나면 교회의 개혁을 바라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 WCC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WCC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문제다. 어둠이 문제가 아니라 빛이 없는 게 문제다. 교회의 개혁, 진리를 지키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소망이 훨씬 더 크다.”
-반대집회를 이끈 이들은 WCC총회 이후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우리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할 뿐이다. 당분간 휴면기에 들어갈 것이다. 주님이 부르시면 다시 나설 계획이다.”
여기에 정리한 내용은 1시간이 넘게 나눈 대화 중 차분한 내용만을 잘 골라낸 것이다. 일부 과격한 표현이나 비유도 있었지만, 적나라하게 적어 놓으면 괜히 오해나 편견을 부를 것 같아 적지 않았다. WCC를 비판하는 측도 문제점은 지적하되 일부 극단적 사례나 해프닝을 침소봉대하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일만 자제한다면, WCC로 인해 한국교회가 분열하거나 갈등이 심화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안의 이런 갈등은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다. WCC총회가 열리는 곳마다 반대 집회가 있었다. 심지어 WCC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도 반대세력이 있다고 독일 동아시아선교회 파울 슈나이스 목사는 전했다.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가 1일 벡스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전세계 성공회 안의 이념 갈등과 신학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일치를 이룰 것인가 묻는 질문이 나왔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일치는 성령이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회나 진보적인 교회나, 서구의 교회나 제3세계의 교회나 모두 함께 하나님의 가족이다. 나는 일치를 가져올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일치를 이뤄갈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서로 교제하고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경에 귀를 기울이며 일치를 구할 뿐이다.”
WCC반대 기도회에 참여한 이들은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근처 교회와 찜질방 등에서 잠을 청한다고 했다. 부산총회가 끝나는 날까지 반대집회를 계속할 것이라고 이들은 밝혔다.
부산=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