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친해지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냥 즐겨라!

입력 2013-11-02 04:05 수정 2013-11-02 14:41


지난 25일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세인즈베리 윙 시어터. 스위스 태생의 인기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신간 ‘치유로서의 예술(Art as Therapy)’을 주제로 하는 특별 강연이 열렸다. 330여 객석은 다양한 연령대의 청중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그는 지난달 영국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이 책을 동시 발간했다. 한국에서는 출판사 문학동네가 ‘영혼의 미술관’이란 제목으로 펴냈다.

그는 영국의 문화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이 한 말, ‘예술은 신흥 종교이고, 박물관은 우리의 새로운 성전이 됐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종교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한편으로 예술이 흥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삶의 의미와 방향, 위안,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 도덕심을 찾을 것인가. 영국에서는 존 러스킨과 매튜 아널드가 종교를 대신할 ‘무언가’가 있으며, 그건 바로 ‘예술’과 ‘문화’라고 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플라톤의 에세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보티첼리의 그림 등이 교회가 하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참된 신앙이 무너진 시대에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목마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얘기다.

그는 책에서 소개한 그림들을 대형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자신의 사유를 풀어나갔다. 그의 생각은 줄곧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철학이나 여행 등 다른 문화 행위와 마찬가지로 치유 효과를 지닌다는 점에 닿아 있다. 강연이 끝난 뒤 그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예술, 그것도 치유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하게 된 계기가 있나.

“나의 관심은 언제나 문화로 통합된다. 문학, 철학, 건축, 예술을 포함한다. 내가 지금까지 쓴 책들은 문화를 우리 삶의 한복판에 던져놓고 문화가 선사하는 치유적인 측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박물관들은 역사의 산물로 예술 작품을 다뤄왔고 물론 그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은 우리의 심리에 활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문제, 사랑 때문에 생기는 문제, 일에서 느끼는 어려움,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는 사실이 주는 힘겨움, 커뮤니티 안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어려움 등에 대해 예술 작품이 대답을 줄 수도 있다.”

-내셔널갤러리에서 강연을 하면서 1400∼1500년대 그림, 1500∼1600년대 그림 등 연도별로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을 우스꽝스럽다고 비판했다. 혹시 강연 추진 과정에서 갤러리 측의 반대는 없었나.

“(나와 갤러리 측의 갈등 같은) 스캔들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웃음). 출판사에서 강연을 준비했는데 반대는 없었다. 한국인처럼 영국인들은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십 억 파운드에 달하는 산업을 다루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기관이다. 이들이 코끼리라면 나는 빈대라고 할까. 그래도 이들의 잘못된 접근 방식에 대해 진심어린 비판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책에서 다뤘던 한국의 ‘달항아리’를 강연에서도 언급했다. 한국 미술에 평소 관심이 많은가.

“페이스북에서 알고 지내던 한국인에게 ‘어떤 예술 작품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달항아리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몇 년 뒤 영국의 한 박물관에서 달항아리를 더 볼 기회가 있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우리 집에도 아주 조그마한 달항아리가 있다.”

-구체적으로 당신의 인생을 바꾼 예술 작품이 있었나.

“예술이 사람을 바꾸는 것은 맞지만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로 나타난다.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가정에서의 생활을 그린 그림’을 꼽을 수 있다. 요하네스 버미어나 피터르 더 호흐 같은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반영웅주의적이다. 기분 좋은 자극이면서도 일상을 품위 있고 올바르게 그려내고 있다. (이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 건) 마침 내 삶이 매력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이 그림들과 마주하면서 나는 나 자신과 내가 처한 환경을 좀 더 우아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평소 어떻게 그림을 감상하나.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림엽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책상 위 벽에 커다란 판을 하나 붙여놓고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엽서를 붙여놓고 감상한다.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예술 작품을 보고 진정한 감정을 느끼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은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사람들이 개인 휴대전화에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저장해 다니는 데 익숙해졌으면 한다. 음악을 저장해서 듣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삼성이 ‘My Museum’ 같은 앱을 하나 개발해주면 좋을 것 같다. 나 자신과 관련된 작품들을 하나씩 저장해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영혼의 미술관’(문학동네)이란 제목으로 책이 소개됐는데 마음에 드나.

“괜찮은 것 같다. 영혼이라는 표현이 개인을 지칭하고 우리 모두 다른 영혼을 가졌으니까. 우리의 영혼 안에서 쌓아갈 필요가 있는 개인의 본성을 담은 박물관이라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아주 마음에 든다. 영어 제목도 ‘영혼의 박물관’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웃음).”

■ 알랭 드 보통은…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런던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대중적인 접근 방식에 비우호적인 학교 분위기에 실망해 학교를 떠나 대중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1993년 소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로 데뷔했다. 동시대 현대인들의 일상을 탁월하게 묘사해 ‘일상성의 마술사’라고 불린다. 평소 사랑, 관계 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자기만의 글쓰기 비법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소설 외에 에세이집 ‘여행의 기술’ ‘불안’ ‘행복의 기술’ ‘일의 기쁨과 슬픔’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등이 총 100만부 이상 팔려나가며 인기를 끌고 있다.

런던=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