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독일, 도청 싸움 이어 경제정책 티격태격
입력 2013-11-01 18:46 수정 2013-11-01 23:56
미국 정보기관의 독일 총리 도청 의혹으로 촉발된 양국 간 신경전이 경제 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
독일이 수출로 번 돈을 쌓아두기만 해 세계경제에 해를 끼친다고 미국이 비난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어처구니없다며 미국의 훈수를 일갈했다. 막대한 양적완화 정책과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로 각국을 불안에 빠뜨린 점 등을 고려하면 세계경제의 최대 위협은 미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 재무부는 31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독일이 지나치게 수출 의존적이라는 미국의 비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재무부 대변인은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독일 경제의 경쟁력과 고품질 독일 제품에 대한 국제적 수요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혁신적인 독일 경제는 완제품의 부품 수출과 수입을 통해 국제 경제 성장에 심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 재무부는 전날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 정책을 분석한 반기 보고서를 공개하며 이례적으로 독일의 수출 우선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은 독일이 수출로 큰 돈을 벌고도 내수 촉진이나 유로존 디플레이션 방어 등을 소홀히 해 결과적으로 유럽과 세계경제를 해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돈이 넘치면 유럽 내 경제강국으로서 유로존 살리기에 앞장서야 하지 않느냐는 논조다. 지난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중국을 추월했다.
미국은 독일이 국내에 돈을 풀어 적극적으로 내수를 부양하고 다른 유럽 국가에 대한 수입 규모도 늘려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경기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유로존이 활력을 되찾고 세계경제 회복세도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적자 재정으로 내수를 부양하거나 급여 인상을 유도하는 정책이 자국 경제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며 거부해 왔다. 미국은 간신히 회복세로 돌아선 자국 경제가 불안한 유럽 경제에 다시 발목을 잡히는 상황을 우려한다.
미국 출신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이날 독일 베를린 연설에서 “유럽 교역국들과 글로벌 경제를 위해선 독일이 경상수지 흑자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경제정책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독일 재무부는 성명에서 자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유로존이나 세계경제에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독일 집권당인 기독교사회당(CSU)의 중진 일제 아이그너는 “우리는 언제나 강력한 수출국이었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디폴트 카드를 들고 정쟁을 계속하는 미국 의회가 사실상 세계경제의 최대 위협”이라며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도 국제 경제에 마약 같은 존재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상수지 적자를 거듭하는 미국이 독일의 수출 우선주의를 비판하는 데는 질투 탓도 약간 있다”며 “독일이 각종 유로존 구제기금에 낸 금액이 이미 이 나라(미국) 연방정부의 한 해 예산 규모”라고 꼬집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메리엇와드먼파크 호텔에서 열린 ‘선택 미국 2013 투자 서밋’ 행사에 참석해 “전 세계에서 미국만큼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곳은 없다”며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일 뿐 아니라 성장하는 시장”이라고 연설했다. 미국 경기회복세가 시원찮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에 나선 것이다. 투자유치 설명회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열리긴 처음이다.
오바마는 “미국은 여전히 내수 및 수출 시장으로서 각종 제조업체에 최고의 목적지”라며 “역사가 증명하듯 미국에 돈을 걸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