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용 피해자 첫 승소… “해방 68년 만에 恨 풀었다”

입력 2013-11-01 18:13 수정 2013-11-01 23:48

일제강점기 여성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판결은 세 번째다. 국내 사법부는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에 각각 남성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판결은 강제 징용 관련 위자료 중 최고액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광주지법 민사12부는 1일 선고에 앞서 “대한민국이 해방된 지 68년이 지나고 원고들의 나이가 80세를 넘는 시점에서 뒤늦게 선고를 하게 돼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면서 “이번 판결로 억울함을 씻고 고통에서 벗어나 여생을 보내기 바란다”고 밝혔다.

양금덕(82·여)씨 등은 1999년 3월 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5년 나고야 지방재판소, 2007년 나고야 고등재판소, 2008년 도쿄 최고재판소 등에서 잇따라 기각 판결을 받았다. 결국 14년 만에 국내 법원에서 승소하게 된 셈이다.

양씨는 전남 나주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4년 5월쯤 ‘돈도 벌고 상급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서 하루 10시간에 가까운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해방 후인 1945년 10월 겨우 고향에 돌아온 뒤 결혼을 하고 자녀들도 낳았지만 남편은 ‘일본군 위안부로 일한 것 아니냐’며 10여년간 집을 나가기도 했다. 결국 그는 나홀로 행상을 하며 4남매를 키워야 했다. 하지만 평생을 ‘위안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양씨 등은 2009년 12월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이 근로정신대의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고작 99엔만 지급한다고 밝히자 이듬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 및 후생노동성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는 광주지법에 1인당 위자료 2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정부가 피해를 외면하는 동안 15년 가까이 소송을 하고 이 자리까지 온 데는 시민단체와 일본의 양심 있는 이들의 힘이 컸다”면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강제 징용 피해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시민과 양국 정부 사이의 응어리진 감정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의 재산을 강제집행하기 위해서는 우리 법원 판결을 일본 법원에서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위자료를 지급받기까지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다른 소송 전례에 비춰 미쓰비시 측은 항소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일본 시민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등이 이들을 돕고 있어 힘이 되고 있다.

광주=김영균 기자 yk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