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의 덫’… 세계경제, 디스인플레이션에 맥을 못춘다
입력 2013-11-01 17:54
세계경제가 저물가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양적완화 정책에도 재정과 가계 모두 빚에 허덕이면서 물가상승률이 둔화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공통의 적’ 저물가=통계청은 1일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7%로 두 달 연속 0%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0.7%는 1999년 7월 0.3%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 경제뿐이 아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4년여 만에 가장 낮은 0.7%를 기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인 2.0%를 크게 밑도는 수치로 전달(1.1%)보다 더 낮아졌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에 힘입어 물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4월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하며 2년 내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BOJ 내부에서 이를 둘러싼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등 ‘장밋빛 전망’ 논란이 일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9명의 금융정책위원 중 3명이 경제 및 물가 전망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디스인플레이션이란 공통의 고민을 갖고 있는 미국과 독일은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30일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 정책 보고서’에서 이례적으로 독일의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을 비판했다. 보고서는 “독일의 무기력한 내수 성장과 수출 의존성은 유로존 경제의 리밸런싱(재균형화)을 방해하고 있다”며 “그 결과 세계경제도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독일이 소비보다 수출에 주력하면서 그 여파로 전 세계가 수요 감소에 따른 물가하락 현상을 겪고 있다며 디스인플레이션 책임을 독일에 미룬 셈이다.
◇근본적 해결책 없다=전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은 그만큼 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등이 양적완화를 시도했지만 풀린 돈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주식시장에만 몰린다는 지적이다. 생산활동이 둔화되다 보니 석유 등 원자재 가격도 하락세다. 그렇다고 빚에 시달리는 국가와 가계는 소비 여력이 없다.
유로존은 2009년 10월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등 유로존 5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재정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특히 저물가 상태가 이어질수록 가계와 기업, 정부 모두 수익이 줄고 다시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유로존이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 역시 과도한 가계빚에 소비는 위축되고 있다. 저물가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만 이를 벗어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세계 각국의 부채 문제와 ‘세계의 공장’ 격인 중국의 생산활동이 주춤하면서 저물가 현상은 선진국 국가들의 공통적인 고민이 됐다”며 “우리 경제도 완벽한 개방 경제이기 때문에 이런 기조에서 당분간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