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 출범 한 달] 창고마다 수입자재 가득… 하루 2000통 문의전화

입력 2013-11-02 04:02


지난 23일 중국 상하이 푸둥신구 와이가오차오(外高橋) 보세구 4호문 주변 룽싸이(龍賽)물류회사. 지하철 6호선 항진루(航津路)역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상하이의 번화가인 난징루에서도 차를 타고 1시간가량 가야 하는 외곽에 있다.

2004년에 설립돼 지난해 매출 4000만 위안(약 69억4000만원)을 기록한 룽싸이물류는 직원 70명을 둔 중견기업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도 100여 곳의 거래처를 확보해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부총경리(부사장)를 맡고 있는 젠리(簡利·여)씨는 최근 생각지 못한 추가 수입이 발생해 싱글벙글이다.

지난 9월 29일 중국이 와이가오차오를 포함해 양산항과 푸둥공항 등 4곳을 자유무역시험구로 공식 지정하면서 창고이용료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당 1.2위안이었던 보관료는 1.5위안까지 올랐다. 이 때문에 하루에만 9000위안(약 156만원)의 이익이 추가됐다.

그가 운영하는 2개동 5000㎡ 규모의 창고에는 스위스 등에서 들여온 각종 건축자재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중국의 부동산 붐이 계속되면서 건축자재 수입이 이어져 이날도 해외에서 들여온 물품이 창고를 채워가고 있었다.

젠 부총경리의 회사처럼 자유무역시험구 출범 이후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수입도 자연스럽게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 정부는 자유무역시험구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대수요로 인해 입주 이후의 이점을 문의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그는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자유무역시험구 관리위원회에는 하루 평균 2000통의 문의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문의전화를 감당하지 못해 아예 콜센터를 따로 두고 상담에 임할 정도다.

금융대국 굴기를 노리는 경제적 실험장

출범 한 달 만에 내국기업 188개, 외자기업 20개 등 208개 기업이 신설됐다. 4일 만에 입주관련 행정서비스가 모두 마무리될 정도로 중국정부는 신경을 쓰고 있다.

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가 출범 한 달을 넘어섰다. 선전특구와 푸둥개방,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이어 ‘제4의 개방’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자유무역시험구는 금융산업개방과 물류혜택, 의료산업, 오락산업 개방 등 큰 윤곽만 있고 구체안이 없는 상황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유무역시험구는 와이가오차오를 비롯해 양산항 등 기존의 보세구 4개 지역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면적은 28.78㎢다. 상하이시 전체 면적 636.18㎢의 4.5%에 불과하지만 중국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첨단 실험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출범한 시진핑(習近平)-리커창(李克强) 체제로서는 중요한 경제적 실험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국이 수출위주의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서비스를 포함한 서비스업 중심으로 발전하기 위해 각종 규제의 빗장을 풀고 산업의 큰 틀을 전환하는 모험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즉 위안화의 국제화, 금리 자유화 등을 도모하는 등 본격적으로 금융시장에서도 ‘대국굴기(大國?起)’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시험구는 바로 금융대국 굴기를 위한 첫 번째 조치다. 리 총리로서는 정치적 승부수에 가깝다. 특히 자유무역시험구 출범과정에서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나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등 금융감독기관의 관료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해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무역시험구 출범이 지지부진하자 리 총리는 지난 7월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관리들의 소극적 자세에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분통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자유무역시험구 운영방안이 나오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관료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상황이라 자유무역시험구 실험의 성패여부는 중국 지도부에게도 반부패 전쟁의 성공과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키포인트다.

산후조리원과 공연 기획 등 한국엔 틈새시장

중국은 이곳에서 원양화물 운수의 자유화 외에도 외자은행 설립과 외국계 의료보험기관 설립 등을 모두 자유화할 방침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에서 나온 주재원이 더 이상 5만 달러 이상을 환전하기 위해 홍콩에 계좌를 설립할 필요가 없어진다.

중국의 금융업 육성방침에 맞춰 홍콩 최대은행으로 중국인에게 인기가 높은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동아시아은행(BEA) 등이 최근 자유무역시험구 진출을 위한 승인을 받았다.

9월에는 싱가포르계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과 씨티그룹이 외국계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출장소 개설을 승인받았다. 새롭게 들어선 금융사만 23곳에 이른다. 이들 외에도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싱가포르계 대화은행(UOB) 등도 진출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등 한국계 은행도 진출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 외에도 한국 기업에는 틈새시장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한국식 산후조리원이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다. 중국인의 산후조리원 이용 빈도가 10% 정도로 매우 낮은 상황에서 최근 중국에서는 한국식 산후조리원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중국식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는 인식이 높다.

한류열풍에 따른 공연기획 분야도 기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실제로 외자공연기획사의 지분제한이 폐지되면서 SM이나 YG 등 국내 대형기획사의 공연기획사 독자설립도 가능해진다. 코트라 상하이 무역관의 정준규 차장은 “중국 문화산업에서 공연 오락의 비중이 낮기 때문에 한국 기획사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진출한다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시험구 운영을 둘러싼 구체안이 좀 더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오는 9∼12일 개최되는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정부의 핵심 싱크탱크인 국무원발전연구센터는 지난 27일 ‘383’보고서를 내놨다. 여기에는 토지소유권 개혁 등을 비롯해 금융자유화확대 등 8개 부문에 대한 개혁안이 담겨있었다.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오랫동안 상무관을 지낸 정룽(鄭龍) 톈룽(天隆)그룹 집행이사는 “구체적으로 자유무역시험구 운영방안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기업에도 분명히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국이 자유무역시험구 지정을 제4의 개방이라고까지 여기면서도 정작 인터넷 분야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워한다는 점이다.

당초 상당부분 규제를 푼다는 원칙 아래 페이스북은 물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을 모두 개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물류창고를 둘러본 날에도 페이스북 등 외국계 SNS의 접속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때로는 급진적이면서도 때로는 선택적이었다.

상하이=글·사진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