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입은 카페·아웃렛] 전통 찻집 아닙니다… 멋 살포시 얹은 cafe입니다
입력 2013-11-02 04:04
캐나다에서 온 줄리아 앤더슨(29)씨를 만난 건 지난 29일 서울 소공동의 대로변이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그녀는 한국의 전통 가옥이나 관광명소 대신 간판 하나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영플라자 사잇길에 자리잡은 스타벅스 조선호텔후문점 간판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왜 찍느냐”고 하자 오히려 그녀는 “신기하지 않아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간판이 금색이잖아요. 스타벅스는 초록색이랑 하얀색인데…”라고 말했다.
이제 기자가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줄 차례였다. 스타벅스 담당자가 말해준 것을 친절하게 전달했다. 소공동이란 지명에 따른 것이었다. 이 지역은 조선 태종의 둘째딸인 경정공주의 궁이 있어 작은 공주골, 한자로 소공주동(小公主洞)으로 불렸고 여기서 지명이 유래했다. 전통과 왕가의 품위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황금색을 간판에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커피 전문점 중엔 한옥으로 된 곳도 있다”고. 이때부터 그녀와 함께 한옥으로 만든 카페 탐방이 시작됐다.
◇카페·아웃렛, 한옥을 입다=최근 한국의 전통미를 앞세운 카페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목조 지붕의 서까래를 그대로 살렸거나 좌식 테이블, 창호문 등을 배치하면서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에게도 이색적인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앤더슨씨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캐나다 대사관이 있는 정동의 차 전문점 오가다였다. 오가다의 2층 매장엔 전통 한옥의 ‘ㅁ’자 구조를 반영해 한가운데를 마당처럼 꾸며 놓은 것이 특징이었다.
이어 삼청동으로 갔다. 삼청동 가는 길에 우선 그녀에게 또 다른 스타벅스 매장을 보여주기로 했다. 바로 미국 대사관 뒤편에 있는 이마점이었다. 이마점의 천장은 툇마루를 옮겨놓은 듯했고 칸막이는 전통 창호살이 대신했다. 묵으로 글씨를 쓴 화선지를 옮겨놓은 것 같은 벽지가 벽을 장식했다. 특히 조선시대 궁중의 말, 가마, 마필, 목장 등을 관장한 사복시 터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문화재청의 자문을 얻어 조선시대와 말에 대한 전통적인 자료 등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전달받아 매장 인테리어에 반영했다. 이마점 직원은 “외국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내국인들도 한국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다며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앤더슨씨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북촌마을을 거쳐 도착한 곳은 최근 오픈한 아티제 삼청점이었다. 입구부터 달랐다. 디딤돌을 밟아야 비로소 매장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1920년대 목조 지붕을 그대로 살렸고 일부 테이블은 좌식으로 배치했다.
전날 북촌의 한옥들을 둘러봤다는 앤더슨씨는 익숙한 듯 좌식 테이블에 앉았다. 높은 천장으로 햇빛이 들어오자 그녀는 “한옥의 느낌이 난다. 커피 맛도 다른 것 같다”며 웃었다.
앤더슨씨는 한국에서 보름간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제주도와 경주가 다음 목적지였다.
그녀에게 또 다른 정보도 제공했다. 경주에 가면 기와를 얹은 전통가옥 형태의 카페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헤어지는 순간 앤더슨씨는 “경주에 가면 꼭 한옥으로 지은 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작별을 고했다.
◇그들은 왜 한옥을 선택했을까=이날 앤더슨씨와 들렀던 곳들처럼 카페들이 한옥과의 접점을 찾고 있다. 건물에 입점해야 하는 서울시내 카페들의 경우 내부 인테리어만 한옥의 정서를 심었다면 경주 등 지방에선 아예 건물을 통째로 한옥으로 만들어 카페를 만든 경우가 많다.
할리스 커피가 최근 경주에 오픈한 경주 보불로점은 세계문화유산 도시 경주의 한국적 건축 방식에 맞춰 목조를 활용했고 지붕에 기와를 쌓아 올려 한옥의 멋을 살렸다. 또 넓은 창호문을 배치해 전통 찻집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스타벅스 경주 보문로점은 이미 이 지역 명소가 됐다. 차를 탄 채 점포 밖에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드라이빙 스루’ 매장이다. 문화재청과 신라문화원에 자문을 구해 안압지 난간을 응용, 계단을 만들었고 천장에는 전통 주점에서 볼 법한 한국식 조명을 달았다. 디초콜릿커피 경주보문점은 문화 유적지 분위기를 내기 위해 건물에 기와를 올려 한옥 형태로 매장을 만들었다.
카페뿐만이 아니다. 최근엔 유통업체도 한옥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롯데는 백제의 혼이 담긴 부여에 한옥으로 꾸민 아웃렛을 지난 9월 열었다. 영업면적 1만7000㎡ 규모에 120여개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이곳은 백제시대 건축양식을 차용, 전통미와 현대적인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게 했다.
서양의 대표 음료인 커피, 서양의 유통 형태인 아웃렛과 한옥은 어떻게 보면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의외의 결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였고 내국인들에겐 ‘힐링’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에 회사 사무실이 있다는 김찬영(34)씨는 스타벅스 이마점 단골이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에 한국의 전통문화는 치유의 느낌을 주는 것 같다”면서 “한옥은 아니지만 창호살·툇마루 같은 것을 활용한 인테리어로 마치 한옥에 들어온 것 같아 안정감을 느끼게 해줘 자주 찾는다”고 설명했다.
역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기업 이미지 개선에도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매년 봄, 가을 문화재청과 덕수궁 정관헌에서 커피나 차를 곁들여 진행하는 강연회인 ‘명사와 함께’는 입소문을 타면서 참석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 9월 행사에는 신청자가 몰려 단 10분 만에 마감됐다.
특히 관광객들이 몰리는 관광지에선 매출 효과도 톡톡히 봤다. 스타벅스의 경우 경주에 드라이빙 스루 매장을 열겠다는 제안을 냈을 당시 미국 스타벅스 본사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인구가 채 30만명도 안 되는 데다 차량 이동이 많지 않은 매장 위치가 문제였다. 그러나 관광객이 많다는 데 주목했다. 지난해 9월 문을 열자마자 전국 530개 매장 가운데 월 매출 3위를 했다. 스타벅스코리아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매출 순위에서도 보문로점은 전국 10위 안에 들었다. 올해 말 경주 4호점을 추가로 내는 것도 검토 중이다. 롯데는 부여를 찾는 연간 관광객이 530만명이나 되고, 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어 매출 증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객을 잡기 위한 새로운 매장 아이디어로 떠오른 게 한옥 스타일”이라면서 “특히 관광객들이 늘면서 내국인과 외국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