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현대판 노예
입력 2013-11-01 18:38
노예제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수렵 시절에는 없었고 목축단계를 지나 농경시절로 접어들면서 노예제가 정착한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의 노예는 천대와 멸시를 받고 열악한 생활을 했다. 매춘에 동원되거나 몸종으로 팔려간 여자 노예는 수없이 많다.
노예가 되는 방법은 다양했다. 범죄자, 채무불이행자, 전쟁포로, 노예의 자녀는 물론이고 숨진 채무자의 처자도 노예로 전락했다. 수요가 급증하자 전쟁을 통해 노예사냥에 나서기까지 했다. 처음엔 식량을 축낸다고 전쟁포로를 학살하다가 일꾼으로 부려먹기 위해 살려뒀다. 노예무역이 성행하면서 흑인 노예 1200만명이 신대륙으로 팔려갔다는 견해도 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노예가 있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는 ‘농사는 노(奴)에게 묻고 길쌈은 비(婢)에게 물어라’는 속담까지 나돌았다. 노비가 농사와 방직을 맡았음을 엿볼 수 있다. 9세기 초 이슬람권에서는 터키계의 백인 노예들을 데려다 근위병으로 삼았다. 이들은 점차 강력한 세력을 얻었고, 군사령관 같은 요직에도 올랐다. 지방에 왕조를 세우거나 대학자가 된 사람도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 지역의 노예제는 악명을 떨쳤다. 결국 노예제에 반대하는 북부가 들고 일어났다. 노예해방전쟁으로 불리는 남북전쟁이 터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세기 부여에 농노가 있었다. 이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노예제가 존속했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비·천민제가 폐지됐다. 하지만 노예제 유풍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2022년 카타르 도하 월드컵을 위해 건설 현장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외신이 최근 보도했다. 섭씨 50도에 이르는 열사의 사막에서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중노동을 하고 있다. 노동력 착취, 임금 체불, 여권 압수, 추방 등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온갖 시련에 봉착해 있다.
특히 고열 탈수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 공사장 안전사고로 천금보다 귀중한 목숨을 잃고 있다. 일주일에 평균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으며 이대로 방치하면 2022년까지 최소한 4000명이 사망할지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얼굴이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한없이 가엾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