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 대법관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韓 전 총리

입력 2013-11-01 18:39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상고심 변호인으로 김능환 전 대법관을 선임한 것은 형식상으로는 별 문제될 것이 없다. 모든 피의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리 재직 시절 사법제도개혁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전관예우의 폐단을 지적해 놓고는 자신이 피고인이 되자 여기에 기대려고 하는 모습이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대통령 자문 사법제도개혁추진위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4월과 6월 나란히 국무총리와 대법관에 올랐다.

물론 대법원은 하급심과 달리 피고인에게 적용된 법이 잘못된 것이 없는지 여부를 가리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변호인과 피고인이 법정에 출두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대법관 출신인 김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는다고 해도 해당 재판부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총리 재직 시 대법관이 된 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해 왜 불필요한 오해를 자초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특히 대법원 상고심이란 언변 좋은 변호사가 구두변론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항소심이 부당하다는 상고이유서 하나 제출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대법관 출신 변호인을 선임할 까닭도 없다. 이미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고등법원 단계에서 끝이 난 만큼 크게 따져 볼 일도 없다. 오히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아 있던 인사가 퇴임 뒤 편의점 운영으로 유명세를 탄 김 전 대법관을 선임해 쓸데없는 관심만 끈 셈이라 담당 재판부의 신경만 곤두서게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법관이 워낙 법리에 밝아 한 전 총리가 법리 문제를 다투는 상고심 변호인으로 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 워낙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이고 하급심에서 무죄와 유죄를 오간 사건인 만큼 전관예우가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급한 나머지 구설에 오르는 선택을 한 그의 처신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