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오인숙] 보이지 않는 열매

입력 2013-11-01 17:34

가을, 열매가 있는 풍경의 계절이다. 한 번 쯤은 내 인생의 열매를 생각해 보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인생의 뒤안길에서 열매 없는 삶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다. 40년간 호주 시드니 조지가에서 전도를 하던 노인이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로부터 ‘당신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며 “지난 삶이 ‘열매 없는 열심’이었노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영국에 있는 한 목사로부터 세계 곳곳의 사람들 수만 명이 시드니 조지가의 노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간증을 듣게 된다. 얼마 전에 내가 본 가슴 뭉클한 실화 동영상이다. 동영상을 보는데 까맣게 잊혀졌던 일이 내 기억 속에 떠올랐다.

교직에 있을 때 방학이 되어 시골 고향에 쉬러 갔을 때였다. 겨울바람이 세찼던 어느 새벽에 성령께서 나를 깨우시고 어느 교회를 찾아 가라고 하셨다. 그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었고 그 추운 겨울 새벽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남동생을 깨웠다. 곤히 자고 있던 동생이 웬일인지 벌떡 일어나 같이 가겠다고 했고 그 교회를 알고 있다고 했다. 거친 바람을 뚫고 동생과 나는 상가 2층에 있는 작은 교회의 좁디좁은 계단을 기어오르다시피 올라갔다. 새벽기도를 할 시간인데 교회는 불이 꺼져 있었다.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지만 인기척이 없어 문을 두드렸더니 목사님이 나와 문을 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전도를 해도 사람은 오지 않고 날마다 혼자 예배를 드리다가 그날은 폭풍도 치고 열매 없는 좌절감에 강대상 앞에서 지쳐 잠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열매를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을 성취하였다고, 풍족한 열매를 맺었다고 자랑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열매 없는 삶이라고 회한에 사로잡힐 수도 없는 것이다. 조지가에서 전도하던 노인이나 새벽에 울던 목사님이나 주님이 그들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셨다는 그것 자체가 열매있는 삶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내 인생의 열매를 볼 수 있을 때는 주님을 만날 그날일 것이다.

오인숙(치유상담교육연구원 교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