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놀라고 떨어야 할 비판

입력 2013-11-01 17:19

이집트의 스케티스는 사막 한가운데 수도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한 수도사가 죄를 범해 마을에서 회의가 열렸다. 원로 모세는 초청을 받았지만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제가 사람을 보내어 말했다. “모두들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와주십시오.” 모세는 일어나 구멍 난 바구니에 모래를 담아 등에 걸머지고 수도원으로 갔다. 그를 기다리던 수도사들은 이 모습을 보고 물었다.

“사부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모세가 대답했다. “내가 지은 죄들이 등 뒤로 흘러 떨어지고 있는데도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다른 형제의 죄를 재판하러 이렇게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사들은 아무 말 없이 그 범죄한 수도사를 용서했다.

수도사는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

모세의 이 행동은 수많은 죄를 짓고 살면서도 자기 죄는 보지 못하고 남의 죄만 탓하는 수도사들의 실상을 보도록 자극했다. 모세가 이렇게 행한 데는 평소 삶의 목표와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세운 수도생활의 7대 원칙 중 첫 번째는 “수도사는 이웃에 대해 죽어야 하며 절대로 이웃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였다. 그는 이것을 풀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선하든 악하든 알려하지 않는 것이며, 악을 행하는 사람을 비웃지 않는 것이며 중상하는 자에게 동조하지 말며 중상하는 말을 즐기지 않으며 이웃을 비방하는 사람을 보아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모세의 비판에 대한 위의 일화와 가르침이 자기 성찰에서 나온 것이라면 다음의 엘류테로폴리스의 테오돌은 성경 말씀에 기초해 타인 비판을 경고했다. “만일 그대가 절제 있는 사람이라면 간음한 사람을 판단하지 마시오. 판단하면 당신도 율법을 그만큼 범하는 것이 됩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분은 또한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눅 6:37)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말씀에 덜 지켜도 될 만한 말씀이 있는가? 명령들 가운데 무슨 중요성의 차이가 있는가.

‘사막교부들의 금언’이라는 책에는 하지 말라는 비판을 했다가 하늘로부터 책망 받는 일화들이 많이 나온다. 테베의 이삭이 어느 수도원을 찾아갔다가 형제가 범죄하는 것을 보고 그를 정죄했다. 그가 사막으로 돌아왔을 때, 주의 천사가 그의 수실 문 앞에 서서 “나는 네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삭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내셔서 네가 정죄한 형제를 어디에 던져버리기를 원하는지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는 즉시 회개하고 “제가 범죄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천사는 “일어나라. 하나님께서 너를 용서해 주셨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판단하기에 앞서 그대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했다.

때때로 인간은 정죄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해 수도사 자신이 정죄했던 그 죄에 빠졌다는 일화도 나온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수도사들은 비판에 점점 무게를 더했다. 6세기 무렵 가자의 도로테오스는 “이웃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죄라는 것을 아는가? 그것보다 더 무거운 죄가 있는가? 남을 판단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는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미워하는 또 다른 것이 있겠는가. 이웃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7세기에는 고백자 막시무스가 “인간은 자신의 죄를 슬퍼하기를 멈추고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심판권을 빼앗아 마치 죄가 없는 사람처럼 서로 판단하며 서로 심판받는다. 이런 일에 하늘은 놀라고 땅은 떤다. 그러나 그들은 감정 없는 존재처럼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책망했다. 비슷한 시기 시나이의 아나스타시오스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남을 미리 판단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권한을 강탈하기 때문”이라고 좀 더 강하게 말했다.

판단과 비판은 오직 하나님 권리

수도사들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권리이며 그분만의 일로 이해했다. 수도사들은 이 때문에 타인 정죄를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는 사탄적 행위로 보았다. 이런 가르침들은 비판을 나쁜 죄로 인식하지 않는 우리에게는 낯설다. 비판하는 것을 영혼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가장 무거운 죄로 여겼던 수도사들의 판단은 너무 과도한 것인가. 그러나 비판으로부터 입는 해악을 본다면, 그리고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는 파괴적 결과를 생각한다면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비판 때문에 고귀한 생명을 끊는 일들이 속출하고 가정과 교회의 하나 됨이 깨지고 국제관계의 평화가 깨지는 사례가 지금 얼마나 많은가. 오늘 하루는 비판을 그치고 혀와 손가락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자.

김진하 교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