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진영·문형표 두 남자의 소신

입력 2013-10-31 21:36 수정 2013-10-31 21:37


우리가 꿈꿨던 인사청문회란 이런 거야. 어쩌면 이런 감탄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청문회장에는 사구체신염이니 근시, 위장전입, 농지법 위반 같은 지루한 단어들 대신 A값과 공적부조, 임의가입자, 소득대체율 같은 신선한 말들이 오갈 거다. 청문회장을 달굴 복지 용어들이라니. 중학생이 ‘vocabulary 33000’을 완독한 뒤에나 갖게 될 어휘력 상승효과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주목할 건 달라질 말들이 담고 있는 질문의 질적 변화이다. 그간 인사청문회에서 탈세, 병역기피 같은 단어가 묻는 건 일관되게 한 가지였다. “너도 똑같은 놈이지?” 듣고 싶은 답도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청문석 한가운데 주인공을 앉혀 놓고 “잘못했다”는 공개 실토를 듣고자 한다. 그건 엘리트 계층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우리 사회가 치러내야 할 희생양 의식 같은 것일 수 있다. 누군가는 나쁜 놈이 돼야 그나마 세상이 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 권력이든 돈이든 많이 가진 이들에게 이참에 돌팔매 한번 해보는 기분. 그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한풀이에도 끝은 있어야겠다.

그런 점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출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기대해볼 만한 이벤트다. “너도 도둑놈이지?” 대신 “당신의 철학은 무엇입니까?”로 질문을 바꿔볼 기회를 잡아보자는 거다. 아쉽게도 벌써 세금 지각납부 의혹이 3건이나 터졌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도덕성 시비는 덜한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 논문표절 같은 지뢰밭이 있긴 하지만 본인은 12개월 보충역으로 병역을 필했고 아홉 살 아들의 병역 문제가 터질 일은 없는 데다 12억원 정도라는 재산도 57세 전문직 종사자가 무리해서 모은 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야당도 장관으로서의 진짜 자질 검증을 벼르고 있다. 경제학도 출신의 연금 전문가인 문 후보자에게는 물어볼 말도, 들어야 할 대답도 많다. 당장 전임 장관의 발을 걸었던 기초연금에 대한 생각을 따져봐야 한다.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식의 기초연금법에 대해 문 후보자는 그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찬성해왔다. 하지만 후보자가 공저한 보고서에는 연계안의 위험성을 지적한 대목도 나온단다. 대체 어느 쪽이 그의 진짜 생각인지 진지하게 짚고 넘어갈 일이다. 가뜩이나 쥐꼬리인 국민연금을 보험료만 더 올리고 수급 시기는 2년 더 늦추자는 신념,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는 게 형평성에 맞는다는 주장의 근거에 대해서도 우리에겐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의 답변으로 학자로서 철학과 정책 추진자로서 융통성 간 거리가 얼마쯤 되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임 진영 장관은 자신이 반대한 국민연금 연계안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진 전 장관이 직을 걸며 반발한 국민연금 연계안에 대해 문 후보자는 학자적 ‘소신’임을 강조한다. 보고서 공개로 그게 진심인지 모호해져버렸지만 적어도 자신의 생각과 청와대 복심을 일치시키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히 읽을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전임자 같은 갈등이 있을 리 없다. 뒤집자면 그의 앞에 선택의 여지는 없단 말이다. 200일 근무한 정치인 장관이 복지정책에 대한 소신을 논하며 장관직을 던진 마당에 문 후보자가 무슨 명분으로 학자의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단 말인가.

문 후보자에게는 퇴로가 없다. 이 말은 문형표란 카드가 어떤 이들에게는 타협 없는 선전포고로 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걱정스러운 건 이 대목이다.

이영미 사회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