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動物權

입력 2013-10-31 18:43 수정 2013-10-31 19:37

요즘 뜨거운 사회 이슈 가운데 하나가 복지 문제다. 복지제도는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복지가 과거엔 먹을거리 해결에 국한됐다면 20세기 들어서는 의료, 교육은 물론 문화적 욕구도 충족시키는 적극적 개념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동물에게까지 그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실 동물복지 역사는 꽤 길다. 영국 인도주의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처드 마틴 주도로 1822년 가축에 대한 잔학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다.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는 ‘동물권’이 있다는 최초의 선언인 셈이다. 2년 후에는 동물학대방지협회가 설립됐다. 그리고 미국은 1873년 운송수단으로 이용되는 동물들에게 28시간마다 먹이와 물,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일명 ‘28시간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산업혁명 영향으로 생산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대량생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축 사육도 이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다. 공장식 밀집사육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닭과 돼지는 평생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에 갇혀 더 많은 달걀과 고기를 생산해내도록 길러졌다. 밀집사육에 따른 카니발리즘을 막기 위해 새끼돼지는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힌다. 병아리는 부리가 잘린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항생제도 다량 투여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중심으로 동물복지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영국은 1999년 돼지의 스톨 사육을 금지한 데 이어 동물복지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아울러 동물학대방지협회가 인증하고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농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프리덤 푸드’ 마크를 붙여 품질을 보증하고 있다. 그 대가로 동물복지 농장은 갈증과 배고픔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등 가축에게 ‘동물의 5대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2012년 3월 산란계를 시작으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 9월부터 양돈에도 적용이 됐다. 제도 시행으로 약 52만 마리의 산란계가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돼지의 경우 인증을 받으려면 스톨 사육, 꼬리 자르기, 이빨 뽑기를 해서는 안 된다. 가축도 자연환경에서 마음껏 뛰어논 것이 건강하다. 가격이 다소 비싼 게 흠이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본다. 문정림 심상정 진선미 한명숙(가나다 순) 의원 등이 추진 중인 동물보호법 개정 작업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