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출범 20년… 경제통합 성과, 정치·외교분야 먼 길

입력 2013-10-31 18:34 수정 2013-10-31 22:32


유럽의 28개 국가 간에는 국경이 없다. 고속열차를 타면 프랑스 파리에서 벨기에 브뤼셀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국경을 넘나들며 하루에 업무를 볼 수 있는 ‘1일 생활권’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들은 누구나 겉표지가 붉은 포도주 색깔인 ‘EU 여권’을 들고 비행기를 탄다.

1993년 11월 1일 유럽공동체(EC)가 EU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됐다. 만 20년 동안 EU는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며 경제·정치적 통합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그동안 이룬 성과도 많지만 좀 더 나은 유럽을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EU는 출범 이후 경제 통합에 팔을 걷어붙였다. 99년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을 출범시키고 공동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했다. 이후 유럽중앙은행(ECB)이 단일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회원국 간 경제 통합은 공고해졌고 유럽 땅에 경제적 번영을 골고루 안겨다 줬다. 선진 회원국이 낸 EU 예산으로 후진 회원국의 경제개발을 지원한 덕에 유럽 대륙 전역에 소득 재분배 효과도 나타났다. EU는 2004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10개국을 새 식구로 받아들이면서 동유럽까지 진출했다. 2008년 이후 유로존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EU의 통합 경제정책 능력은 더욱 확대됐다. 현재 EU의 예산 권고안은 회원국의 임금 수준, 연금 정책, 사회보장 지출 등 민감한 분야까지 규제하고 있다.

덩치가 커지면서 외교적 목소리도 높아졌다.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의 하드파워와 대비해 EU는 국제무대에 소프트파워로 자리 잡았다. 이라크전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수단의 다르푸르 참사(내전) 등 각종 국제 현안에 대해 대화와 원조 등 비군사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며 지지를 얻었다. 사법 분야 통합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봤다. 유럽공동경찰기구인 ‘유로폴’은 국경을 넘는 공조수사로 범죄 퇴치에 기여했다. EU집행위원회는 유로폴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국가 주권이 부정당하는 데 대한 거부감은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장기화되면서 더욱 커졌다. 경기침체로 인한 독일의 독주는 EU의 탄생 배경을 무색하게 했다. 국가 간 실업률 격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리스와 스페인이 실업률 26%를 넘어섰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각각 5.3%, 4.8%를 기록했다.

외교 분야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EU는 시리아 반군에 대한 무기금수 조치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개별국가의 판단에 맡기면서 실질적인 합의를 포기하기도 했다.

EU에 대한 유럽인들의 신뢰도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 센터가 최근 유럽 주요 8개국 시민 76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EU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지난해보다 15% 포인트 하락한 45%에 그쳤다. 최근 실시된 유럽 국가 총선에서 ‘EU 반대’ ‘유로화 반대’를 기치로 내건 극우파 정당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30일(현지시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경기침체 여파로 유럽에서 반EU 성향의 정당이 우려스러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주류 정당들은 (통합) 유럽이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