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기업 유동성 빨간불… 부채비율 200% 이상 기업 절반이 적자
입력 2013-10-31 18:30 수정 2013-11-01 00:45
부채비율이 200% 이상인 대기업(부채과다기업) 중 적자기업이 5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부진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일부 대기업의 유동성 위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또 경기침체와 전세가격 상승 등으로 중산층·자영업자 가계가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31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시장과 외환건전성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의 채무부담능력과 은행 수익성은 지난해보다 나빠졌고 가계의 채무상환부담도 개선되지 못했다.
특히 상당수 부채과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가운데 이들 기업의 단기성 차입금 비중도 매우 높은 상태다. 차입금 절반 이상의 만기가 1년 이내인 기업이 65%에 달한다. 부채과다 기업의 가용한 현금성 자산규모도 단기성 차입금 대비 32%에 불과하다. 또 회사채 발행 여건이 악화되고 은행들이 3분기 이후 대기업 대출을 엄격하게 하고 있어 비우량 대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
기업 양극화는 한층 심해졌다. 상위 10대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상반기 6.8%에서 올해 상반기 7.8%로 상승한 반면, 여타 기업은 5.1%에서 4.7%로 떨어졌다. 현금흐름으로 단기차입금을 갚고 이자비용을 댈 수 있는 여력을 나타내는 현금흐름보상비율도 상위 10대 기업은 170% 수준인 데 반해 여타 기업은 30% 미만이다.
가계부문에선 중소득(소득 3∼4분위)·중신용(신용도 5∼6등급) 가계의 채무부담이 늘고 있다. 이들의 소득은 제자리인데 금융당국의 대출억제 정책으로 대부업체를 통한 연 30%대 고금리 대출이 늘었다. 또 천정부지로 뛴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한 전세자금대출 부담도 커졌다.
특히 대부분이 중소득·중신용 계층에 속하는 자영업자의 채무부담이 상당한 수준이다. 소득 3분위 자영업자의 원리금상환부담비율(경상소득에서 원리금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말 18.2%로 임금근로자 평균(11.7%)의 1.5배를 넘었다. 자영업자 1인당 대출은 지난 3월 말 평균 1억2000만원으로, 임금근로자(4000만원)의 3배에 달했다. 또 은행과 제2금융권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2010년 말 0.84%에서 지난 3월 말 1.34%로 높아졌다. 이 같은 중산층·자영업자의 어려움에는 전세가격 상승과 주택가격 하락,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로 인한 자영업자 급증, 진출 업종의 편중(음식·숙박업 등) 현상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보고서에서 저금리가 은행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금리를 1% 포인트 내리면 연간 이자이익이 1조6000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은은 저금리 추세가 길어지고 대기업 부실이 늘어남에 따라 은행 수익성은 단기간 내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은행들의 대외 지급능력은 개선됐다. 국내 은행과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 53곳을 대상으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실험)’를 한 결과,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6월 말의 상황이 돼도 은행들이 3개월까지 버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금융권인 비은행 금융기관은 총자산 규모가 은행의 80.9%에 달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지만 내실은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증권사와 신용카드사는 수익성이 나빠졌고, 생명보험사는 금리변동리스크가 커졌으며 상호금융조합은 가계대출 건전성이 저하됐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