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월말만 되면 도둑 들끓는다는데…
입력 2013-10-31 18:21
서울 영등포동 쪽방촌에 사는 박모(42)씨는 지난 18일 전 재산을 도둑맞았다. 10월분 기초생활수급비 47만원이 입금된 이날 박씨는 은행에서 전액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돈을 찾아 쪽방촌으로 돌아오자 낯선 남성 3명이 다가와 “돈 좀 있어 보이는데 술 좀 사 달라”고 했다. 모처럼 돈이 생겨 기분이 좋았던 박씨는 흔쾌히 소주와 막걸리를 샀다. 계속되는 술 권유에 만취한 그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주머니의 돈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10월 방값을 내지 못한 박씨는 다음 수급비 지급일까지 노숙 생활을 해야 할 처지다.
매월 20일을 전후해 ‘쪽방촌’에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노령연금 등 빈곤층 복지급여가 지급되는 날을 노리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 자금’을 털어가는 파렴치 범죄여서 집중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씨의 이웃 강모(63)씨도 두 달 전 같은 일을 당했다. 지방에서 일하는 아들이 보내준 돈과 기초수급비를 합쳐 100여만원을 잃어버렸다. 강씨도 박씨와 같은 수법에 넘어갔다. 평소 팍팍한 살림에 남에게 베풀 기회가 없었던 강씨는 돈이 생기자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술을 대접했다. 술자리에서 강씨의 씀씀이를 눈여겨본 누군가가 그가 취한 틈에 지갑을 들고 도망쳤다. 크게 상심한 강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만취 상태일 때 벌어진 일이라 전혀 기억나지 않아 범인을 잡기란 불가능했다.
서울 돈의동 쪽방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9월 20일 박모(70)씨는 파고다공원 인근 은행에 가서 입금된 기초수급비 중 방값과 생활비 30만원을 찾았다. 몇 달 전 다리를 다쳐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에 돌아온 그는 지갑을 꺼내려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은행에서 집까지 오는 사이 누군가 지갑을 빼간 것이다. 누가 언제 훔쳐간 건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길에서 잠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당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박씨는 “쪽방촌 인근에 수급비 지급일을 미리 알고 그때를 노리는 소매치기가 많다”며 “10∼20대 젊은이들도 이런 일에 가담해 몸이 약한 노인들은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고 말했다. 다행히 집주인이 9월 방값을 조금씩 나눠 낼 수 있도록 배려해줬고 그동안 모아둔 쌀과 라면도 있어 박씨는 간신히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다.
쪽방촌 인근 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이곳 주민들은 돈이 들어오면 은행에 넣지 않고 한번에 찾아 보관하는데 매월 20일 전후부터 월말까지 이런 특성을 노린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며 “어려운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거라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