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태 사과 없는 돌파… ‘박근혜식 해법’ 통할까

입력 2013-10-31 18:09


박근혜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분명하게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에 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사과 먼저 하라”는 야당 요구에 밀리지 않고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사법부 결정 후 처벌·재발방지 대책 마련이라는 다소 원론적인 ‘박근혜식 해법’이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진화하는 대통령의 ‘국정원 댓글 의혹’ 언급=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 야당이 이 사건을 문제삼았을 때부터 줄곧 “지난 정권에서 일어난 일로, 내가 수혜를 얻은 게 없다”면서도 “불거진 의혹은 철저히 조사해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9월 여야 대표와의 3자회동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 “제가 댓글 때문에 당선된 것 같나요”라고 반문했듯 국정원 댓글 의혹이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선거개입, 즉 관권선거는 아니었다는 스탠스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7월 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는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국정원 댓글 관련 의혹으로 여전히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어 유감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실체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8월 26일 같은 회의를 소집해선 “작금에는 (야당이) 부정선거까지 언급하는데 저는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며 민주당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언급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발언보다 강도가 높았다. 박 대통령은 분명하게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을 언급하며 “그 의혹들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내놨다.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건 성격 규정을 놓고선 박 대통령의 생각이 극적으로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원칙을 강조한 박근혜식 해법=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에게 “이런 일련의 의혹을 반면교사로 삼아 내년 지방선거를 대한민국 선거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국정원이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을 입에 올리며 “철저한 조사와 사법부 판단이 나오는 대로 불편부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연일 불거져나온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의혹에 대해 향후 강도 높은 책임 추궁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사법부 판단을 정치권이 미리 재단해선 안 된다”거나 “사법부의 독립과 판단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데 중요하다”는 말로 민주당의 ‘지난 대선은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관권선거’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사법부가 재판 중이고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그 결과도 기다려보지 않고 정치공세만 취하는 것은 국민을 현혹시키는 일일 뿐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