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중심은 서울?… No, 지방서 떠야 시장 제패!

입력 2013-10-31 17:55 수정 2013-10-31 22:40


2009년 4월 24일 경기도 평택 일대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도로 위에는 차량이 몰려들었고 인도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이날 문을 연 AK플라자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매장을 방문한 사람은 1만명 정도였고, 영수증 발행건수는 1만8000건에 이르렀다.

밭일을 마치고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가던 길에 백화점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 2013년 현재 평택시는 미군 부대 이전과 삼성전자 산업단지 유치로 도농복합도시에서 첨단산업 도시로 변화했다. 여전히 AK플라자는 평택주민이 꼽는 최고의 백화점이다.

평택에서 AK플라자가 누리고 있는 인기는 지난 대선 후 인터넷에 회자된 일명 ‘뱅뱅이론’의 또 다른 버전이다. 뱅뱅이론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세상이 사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입지 않아 뱅뱅 청바지가 사라졌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뱅뱅이 국내 청바지 시장에서 압도적 1위라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올 초 뱅뱅어패럴은 지난해 토종 캐주얼 브랜드 매출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 증가한 2300억원(출고가 기준)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었다. 리바이스나 캘빈클라인 등 해외 유명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서 거둔 매출은 1000억원대 수준이었다.

뱅뱅 측은 최근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매장 사업 진출 등으로 지난해에 이어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뱅뱅 청바지처럼 이미 유행이 지났거나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브랜드들이 의외로 인기를 끌고 있다. 뱅뱅이론을 적용해 애경이론, 휠라이론, 인디안이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31일 “신학기가 되면 지방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가방은 휠라”라며 “서울은 유행의 흐름이 빠르지만 지방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 일단 명품이란 인식이 자리 잡히면 쉽게 변하지 않아 꾸준히 매출을 올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애경이 운영하고 있는 AK플라자도 지방에서는 백화점 ‘빅3’인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보다 더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AK플라자 수원점은 올 상반기 매출만 2500억원에 이른다. 같은 지역에 있는 갤러리아백화점은 AK플라자 매출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분당에서도 지난해 AK플라자는 6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롯데백화점을 압도했다. AK플라자 관계자는 “평택점, 원주점의 경우 이 지역에서 유일한 백화점이고 수원점도 AK플라자가 잘 되면서 롯데가 내년에 백화점 개점을 준비 중”이라며 “지역 밀착 마케팅이 먹힌 셈”이라고 말했다.

패션업체 세정도 남성복 브랜드 ‘인디안’을 등에 업고 유통 업체로 변신을 선언했다. 서울에서는 인디안이 한물 간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한 반면 지방에서는 고객 충성도가 강력하다. 인디안은 386개 매장 중 수도권 116개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지방에 있다. 지방 매장의 매출은 전체 매출에서 72.4%를 차지한다. 세정은 인디안의 고객 충성도를 활용하기 위해 인디안 매장을 ‘웰메이드’ 매장으로 바꾸고 있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서울이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맞지만 매출을 이끄는 것은 아니다”며 “이것이 지역 친화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기업이 소리 없이 강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