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침묵하던 朴대통령 왜 입 열었나
입력 2013-10-31 17:57 수정 2013-10-31 22:21
그동안 국가정보원 정치 글 의혹 사건에 대해 ‘침묵의 정치’ 행보를 이어오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 달여 만에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처음으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언급하며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개진했다. 예상보다 강도가 훨씬 높은 박 대통령의 정치현안 발언은 야당이 제기하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간접적으로나마 시인하면서 본격적인 과거와의 선긋기 의도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개인적으로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지난해 대선)에 국가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의혹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국민들께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해가 지금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전히 과거의 정치적 이슈에 묶여서 시급한 국정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엊그제 국무총리가 강조했듯 현재 재판과 수사 중인 여러 의혹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확실히 밝혀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입장 표명을 거듭 요구해 왔던 정치권, 특히 야당을 향해 거의 대답 형식으로 이날 회의를 이끌어갔다. 우선 민주당을 향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세우는 데 중요한 사법부의 판단을 정치권이 미리 재단하고 정치적 의도로 끌고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야당이 지난 3월 이후 줄곧 국정원 정치 글 의혹을 ‘민주주의 전체의 위기’로 국면 전환하려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서유럽 순방을 앞두고 국정원 대선개입 파문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속내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또 국정원의 각종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재발 방지를 국민 앞에 약속함으로써 더 이상 민주당발(發) 정치공세가 ‘약효’를 낼 수 없게 하겠다는 박 대통령 특유의 승부수도 엿보인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느 누구도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된 나라로 진실을 가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거나 “우리 국민도 진실을 벗어난 정치공세에는 현혹되지 않을 정도로 민도가 높다”고 한 언급 속에 박 대통령의 소신과 자신감이 잘 드러나 있다.
박 대통령은 전날 치러진 10·30 재·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두 곳 모두 압승해 정국 주도권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하자 자신있게 정국을 정면돌파할 의지를 표명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