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流 10년’… 장금이 치맛자락 그만 놓고, 새 장르·얼굴 찾아내야

입력 2013-10-31 17:47


한류는 몇 살일까. 2003년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을 감안하면 열 살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1960년대에는 ‘이제 막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낸 한명숙(78)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있었고, 1970년대에는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한국 가수로 처음 수상한 정훈희(61)가 있었다. 조용필(63), 패티김(본명 김혜자·75), 계은숙(51), 김연자(54)는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할 정도로 1980년대 후반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와 그룹 H.O.T는 1997년 중국에서 한류라는 표현을 처음 나오게 했다. 싸이(본명 박재상·36)의 ‘강남스타일’로 K팝을 이제 막 접한 국가들도 아직 많다. 이처럼 한국 대중문화의 확산을 뜻하는 한류는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나이로 계속 자라고 있다.

◇드라마와 K팝의 쌍끌이=전문가들이 올해를 ‘한류 10년’으로 꼽는 이유는 2003년 ‘겨울연가’와 ‘대장금’이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충족시킨 절묘한 호흡으로 한류 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일본 NHK를 통해 방영된 ‘겨울연가’는 일본 중년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고 ‘욘사마’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주인공 배용준(41)의 경제적 효과가 3조원에 달한다는 보고서(2004년 현대경제연구원)가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흥행이었다. ‘대장금’은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사극의 한계를 딛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갔다.

한류 붐 1단계가 드라마라면 2단계는 K팝이 주인공이었다. 일본 현지화 전략을 통해 데뷔한 보아(본명 권보아·27)는 2002년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이를 발판으로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카라 등 아이돌 가수들이 잇따라 아시아 시장에서 K팝 열풍을 이끌었다. 전 세계 대중음악의 중심이지만 한국 가수들에게 높은 벽이었던 미국 시장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지난해 9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7주간 2위를 기록하며 큰 전환점을 맞았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등공신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월 발간한 한류백서에서 드라마(1.0단계)와 K팝(2.0단계), 쌍두마차로 활약한 한류가 이제 3.0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전통문화를 세계와 공유하는데 박차를 가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은 ‘한류 스토리’ 8월호에서 애니메이션 뽀로로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한국 프로야구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투수 류현진(26)을 한류 전도사로 꼽았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는 한류 확산으로 인해 각 국가에서 한국 상품 구매가 원활해지는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2의 욘사마와 장금이는 언제=화려함 속에 그늘도 있다. 당장 욘사마와 장금이의 뒤를 잇는 인물이 없다. 수많은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으로 팔려나갔고 일부는 선판매되는 호사까지 누렸지만 대박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한류 효과를 의도적으로 노려 주인공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해외 판매를 의식한 안일한 제작 관행이 이어졌다.

지난 17일 경주에서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주최로 열린 제8회 아시아 드라마 콘퍼런스에 참가한 일본방송 관계자들은 일제히 한류가 위기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한류 드라마 유통사 SPO 요코타 히로시 이사는 “2011년 하반기 이후 6개월마다 한국 드라마 매출이 60%씩 하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3분기 관객 4325만명을 동원해 분기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한국영화가 집 밖만 나가면 맥을 못 추는 것도 고민이다. 일본에서 2005년 개봉한 ‘외출’,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을 빼고 나면 마땅한 흥행작이 없다.

중국 진출은 자국영화 보호정책과 불법복제 성행에 가로막혀 있다. 해외 국제영화제에서의 선전으로 유럽시장에서 한국영화에 대해 관심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한류에 대한 시각 자체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올해 문체부에서 발간한 콘텐츠 산업백서에 따르면 해외로 가장 많이 수출된 한국 콘텐츠는 드라마도 K팝도 아닌 게임이었다. 23억7807만 달러(2011년 기준)로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55.3%를 차지했다. 드라마를 포함한 방송과 K팝은 고작 5% 내외에 그쳤다.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인 게임산업을 한류와 접목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드라마는 분위기가 많이 꺼졌고 K팝은 더욱 확산되고 있는데 한류라는 틀 자체를 넓혀서 동력을 확장시켜야 한다”며 “모든 분야에서 한류스타 몇 명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스토리를 다양하게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