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질적 희생에 관한 상념들… 문형렬 시집 ‘해가 지면’
입력 2013-10-31 17:42
문형렬(58·사진) 시인의 신작 시집 ‘해가 지면 울고 싶다’(도서출판 기파랑)는 타자에게 자신을 던져주는 사랑의 희생적 자세가 그 바탕을 이룬다. 버린 후에는 아무것도 얻고자 하지 않기에 그의 시는 더욱 곡진하다. 마치 곡비(哭婢)의 울음 같다.
“복사꽃/ 피는/ 봄날에// 너와/ 나는/ 또 맹세했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사랑한다고// 복사꽃/ 다/ 지고// 우리 모습/ 간데/ 없어도// 아픈 줄도/ 몰랐네”(‘복사꽃 피는 봄날에’ 전문)
물론 사랑은 고통이다. 사랑과 고통은 동의어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그래서 문형렬은 이번 시집을 통해 고통 없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사랑을 선택할 때 그건 이미 고통을 선택한 것이 된다.
“외로운 사람은 귀가 밝아져 가네/ 푸른 날 언덕에 가만히 엎드리면/ 세상은 크고 어둠은 길어라/ 오늘도 당신은 아니 오시고/ 천지에는 휘날리는 그리움/ 하, 봄날은 하늘처럼 높아서/ 가슴마다 무너지네/ 나는 물을 따라 한없이 걸어가네/ 당신은 오늘도 아니 오시고/ 외로운 사람은 귀가 멀어져 가네”(‘외로운 사람은’ 부분)
님이 오시는 줄 알고 귀가 밝아지던 사람은 어느덧 기다림에 지쳐 귀가 멀어져간다. 기다림의 두 가지 자세에 대한 감각을 ‘귀’로 전환시키는 서정성은 문형렬 만의 것이리라. 눈멀고 귀멀고 한 삼년, 또 삼년…. 이런 구식의 사랑을 이 속도의 시대에 호출하는 시심은 너무 극진하고 애절하다. 그렇기에 문형렬은 사랑의 시인이다.
“나는 회색양복을 걸치고/ 막다른 봄 속으로 걸어갈 뿐/ 그곳에 이르러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회색양복도 언젠가 구겨질 것이고/ 닳아서 입지 못하겠지/ 그러면 나는 먼먼 봄날에/ 다시 회색양복을 사 입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어간다/ 너 듣고 있니?/ 너 알고 있니?”(‘회색양복’ 부분)
어쩌면 반복만이 진실일 것이다. 그리움을 반복하기 위해 사 입는 회색 양복, 그 양복을 입고 문형렬은 오늘도 봄에서 만난 사랑을 가을로 옮기기 위해 거리를 쏘다닐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