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그들이 돌아왔다
입력 2013-10-31 18:26
프로야구 골수팬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는 세 명의 투수들이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다. 2001년 다승왕, 승률왕, 구원왕에 오르며 투수 부문 3관왕을 차지, 골든글러브까지 거머쥐었던 신윤호. 1998년 데뷔해 한국시리즈에서 최연소 구원투수와 승리투수를 기록, 신인왕을 수상한 통산 112승의 김수경. 두산베어스의 올드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이름, 통산 102승의 파워피처 박명환.
응원하는 팀의 선수는 아니었어도 태극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KOREA’를 가슴에 새기고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함께 환호하고 탄식했던 기억들. 그렇게 각자의 이력에 최정점을 찍은 그들은 서서히 혹은 갑자기 전광판의 라인업에서 지워져갔다. 누군가에겐 마음속의 전설로, 누군가에겐 기록 속의 이름으로, 흔적만 남기고 시나브로 그라운드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왔다. 신윤호와 박명환은 프로야구단의 입단테스트를 통해 새 유니폼을 입었고 김수경은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문을 두드려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됐다. 부상과 세월의 파고에 떠밀려 마운드를 내려와 사업가와 코치, 방출선수로 다른 인생을 살던 그들의 귀환은 가을야구로 한껏 들떠 있는 그라운드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줬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어떤 이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실패할까 걱정하기 바쁘고, 또 어떤 이는 그저 어린 후배의 기회를 빼앗을 뿐이라고 그들의 도전을 폄훼하고 나섰다.
정말 그럴까. 스포츠의 감동은 신기록의 타이틀, 진기명기의 플레이, 승리의 함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화려한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속에 우리가 찾는 감동이 있다. 그 과정의 매순간이 바로 도전이고 그것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프로세계의 ‘기회’인 것이다. ‘다시’라는 도전의 과정 속에서 ‘나이’라는 유통기한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실패라 쓰고 성장이라 읽는다.” 일본프로야구팀 라쿠텐의 명예감독 노무라 가쓰야의 말이다. 도전을 통한 베테랑의 성장은 그 자체가 프로야구를 진화시킨다. 그들이 새로 쓴 역사는 누군가를 다시 꿈꾸게 하고 도전하게 만든다. 이만큼 가치 있는 선택이 또 있을까.
야구도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9회말 2아웃,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를 향해 뛰어가는 그들의 용기 있는 발걸음에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