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소수공상’ 저자 김민형 옥스포드대 교수 “英 교수들, 교육열 높은 한국 부러워해”
입력 2013-10-31 18:27 수정 2013-10-31 18:51
독특한 수학 교양서 한 권이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 김민형(50) 교수가 쓴 ‘소수공상’(반니)이다. 우리가 흔히 ‘수(數)는 양(量)을 표시하는 개념’이라고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이 세계적인 수학자는 ‘상태 공간’이라는 개념 등을 소개하며 수를 공간과 연계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연구하기도 바쁠텐데, 대중들과 직접 소통에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달 28일 영국 옥스퍼드대 머튼 칼리지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번 책에서 ‘소수(素數·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정수)’를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 입자와 연계시켜 흥미로운 공상을 펼쳐 보인다. 1 곱하기 5는 1을 5번 더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우리에게 그는 곱셈은 덧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개념이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던 수학이 원래 이런 것이었나 싶을 정도다.
독자들에게 너무 어렵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의 수학 능력은 무척 뛰어나다”고 했다. “사실 영국, 미국 출판사에서는 이런 수학 공식 들어간 책은 덮어놓고 안 팔린다고 했는데 적어도 한국에선 공식이 있다고 책을 안 사는 것 같진 않더라구요.”(웃음)
대중들의 지적 욕구와 기대에 학자로서 부응해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박형주 포스텍 교수, 인터파크 이기형 회장과 뜻을 모았다. ‘K.A.O.S(Knowledge Awake On Stage)’란 타이틀의 대중 수학 강연을 시작한 이유다.
국내에선 이제 조금씩 알려지는 중이지만,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수학자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애리조나대, 퍼듀대 교수를 거쳐 영국 런던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옥스퍼드대로 옮겼다. 인터뷰를 위해 그의 연구실로 가던 중 교수 응접실 안쪽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 교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가 프린스턴대에서 옥스퍼드대로 옮기면서 김 교수를 옥스포드대에 추천한 인물이다.
해외의 쟁쟁한 대학에서 배우고 가르쳤던 그에게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물었다. 의외로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우려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어요.(웃음) 영국 사회는 학문에 대한 존중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영국 교수들 중에는 오히려 교육열 높은 한국 사회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긴 정체돼있지만 한국은 어느 분야든 역동적이잖아요? 물론 에너지가 넘치다보니 부작용이 없지 않지만 지금껏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아버지는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다. 그의 형제들 모두 해외에서 학문의 길을 걷고 있다. 집안 대대로 특별한 교육의 비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14세, 11세 아들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물었다. “교육 전문가는 한국의 부모님들이잖아요. 전 크게 해 주는 것도 없는데…(웃음).” 대신 그는 인터뷰 말미 원고 뭉치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두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틈틈이 쓴 편지들이었다. 문화, 예술, 종교 등에 관해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이 느낀 것, 아이들이 알아야할 이야기를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유학 간 자신에게 편지를 통해 그랬던 것처럼. 쑥스러운 듯 내민 원고는 사랑하며 믿고 지켜봐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옥스퍼드=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