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댓글 진상 규명과 출구 모색 서둘러야
입력 2013-10-31 18:30
박근혜 대통령이 31일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가정보원 댓글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골자는 세 가지다. 국가기관들의 대선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국민들에게 진상을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첫 번째다. 이어 사법부 판단이 끝나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으며, 모든 선거에서 공직자들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하도록 단속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정원 사태로 대치정국이 심화되고 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해 오던 박 대통령이 작심한 듯 발언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2일부터 시작되는 유럽 순방에 앞서 국정원 댓글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우지 않으면 여론이 악화돼 향후 국정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했을 것이고, 지난 27일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가 별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점도 고려됐을 듯하다. 여하튼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국정 최고책임자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국정원 사태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꽉 막혀 있는 정국을 풀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고, 사법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공을 넘겨받은 야당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민주당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가 한창인 상황에서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을 교체하며 수사를 방해한 장본인이 박 대통령 아니냐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정의당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야당이 보기엔 박 대통령 언급 수위가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해명이 없고, 개인적으로 의혹을 살 일을 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왔다고 자평한 점 등이 불만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국정원 댓글 정국’이 10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되돌아볼 때가 됐다. 무엇보다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4·24 재보선에 이어 10·30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완패한 점도 유념해야 한다. 단 두 곳에서 실시된 ‘초미니 선거’였지만 민주당이 얻은 표는 지난 대선 때보다 적었다. 여기에는 총체적인 관권·부정선거로 당선된 박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진상 규명과 불법을 저지른 인사들에 대한 엄벌은 당연한 명제다. 여권이 뭔가 감추거나 축소하려 했다간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은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나 일단 검찰 수사와 재판이 어떻게 결론날지 지켜보는 쪽으로 출구를 모색하는 게 순리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