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조선인 이민자 애환의 역사 연변 고샅고샅 살아 숨쉰다
입력 2013-10-31 17:20
연변 100년 / 김호림 / 글누림
소설가 황석영이 북한 체류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내놓은 지도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났다. ‘가보니 거기도 사람이 살고 있더라’는 책 제목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연변 작가 김호림(48)은 연변 100년사를 ‘지명이 살아 있었네’라는 의미로 풀어낸다. 지명은 고스란히 삶의 무대이자 생활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연변(延邊)’이라는 이름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913년 출판된 지방지(地方志)인 ‘길림지지(吉林地志)’로 알려지고 있다. ‘대륙교통’을 기록하면서 ‘연변’이라는 이름을 거명하는데 이는 중국·러시아·북한 3국이 인접한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또 연길 변무공서의 관할에 있었기에 ‘연변’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꼭 10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좀 다른 설을 제기한다. “각설하고, 연길이라는 이 지명의 시원은 연기가 모인다는 의미의 연집(煙集)이라고 전한다. 연길은 사방이 모두 산에 에둘린 작은 분지이다. 개간 초기에 인가가 자리 잡은 언덕에는 늘 연기가 자오록하게 피어올라 안개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군락을 연집강(烟集崗)이라고 불렀으며 연길은 훗날 이 연집의 음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연집(烟集)은 아직도 연길 시내의 서북쪽에서 흘러내리는 강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연변의 많은 지명들은 조선인 이민자들의 주거 환경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용정’이라는 이름은 19세기 말 이곳에 정착한 조선인들이 옛 우물을 발견하면서 작명되었고 ‘도문’은 도문으로 불리기 전, 워낙 석회 가루가 날리는 동네라는 의미의 회막동(灰幕洞, 일명 회막골)이라고 불렸다. 들판을 찾아 또 샘물을 찾아 이삿짐을 풀었던 조선인들은 ‘간평(間坪)’처럼 골짜기 사이에 들 평(坪)자를 넣어 지명을 만들었고 또 약수동(藥水洞)처럼 샘물가에 삼수변의 동(洞)자를 넣어 감칠맛 나는 이름을 지었다.
조선인 이민자들이 남긴 지명 가운데는 나중에 중국말로 고착되고 다시 우리말로 불리다보니 뭐가 뭔지 헛갈리게 하는 엉뚱한 지명도 있다. 두만강 기슭의 대소(大蘇)라는 동네는 얼핏 ‘소련은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실은 ‘큰 소’라는 의미에 연원이 있다. 마을 뒤 산언덕이 큰 소처럼 생겼다고 유래된 지명이다. ‘큰 소’를 중국말로 바꿔 적으면서 클 대(大), 소는 발음 그대로 ‘소(蘇)’자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고향 용정시 명동(明東)마을은 ‘동방을 밝힌다’는 의미다. 함경도 회령 출신의 선비 김약연이 명동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명동’이라고 작명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십리 길을 걸어서 명동학교를 다닌 손영숙 노인은 이렇게 증언한다. “그때는 늑대가 수시로 출몰했으며 그래서 저마다 손에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다녔다. 발에 걸친 짚신은 험한 산길 때문에 며칠도 되지 않아 구멍이 펑하니 뚫렸다. 그래서 아버지는 짬만 있으면 마루턱에 앉아 짚신을 삼았다.”
사이섬 간도(間島)는 말이 섬이지 원래 강기슭에 이어진 흙모래 더미였다. 1868년 홍수로 인해 처음 형성되었을 땐 가짜 섬이라는 의미의 가강도(假江島)로 불렸으며 강통도(江通島)로도 불렸다. 그러나 한때는 ‘복새섬’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복새(복숭아)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길시 조양천(朝陽川) 마을은 흔히 ‘내 천(川)’자 때문에 인근에 흐르고 있는 부르하통하를 의식해 만들어진 지명일 줄로 알고 있지만 실은 양천 허씨 집성촌이 있었기에 그리 불리고 있는 것이다.
‘소영촌(小營寸)’은 한때 청나라 포병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지금은 연길 동쪽의 큰 촌락이지만 원래는 소금을 만들어 팔던 촌락이어서 소금 솥이라는 뜻의 ‘염과성(鹽鍋城)’으로 불렸다. 염과성은 마을 첫 정착자인 한족의 성씨를 따서 ‘정개네(鄭家溝) 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 무렵 째지게 가난했던 한 조선인이 정씨네 집안에 딸 셋을 전부 줘버려서 구설수에 오르기 했다.
이렇듯 연변은 그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궜던 조선인 이민자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지명 자체가 둘도 없는 생생한 박물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연변’하고 불러보면 어디선가 밥 짓는 연기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