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비리 속수무책] 정부 차원 도핑기준 없어 혼선… “기준 제시해달라”

입력 2013-10-30 18:44 수정 2013-10-30 22:44


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이 발 빠르게 공무원 체력시험의 부정 약물 대응에 나선 것은 몇 년 전부터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 응시자 도핑테스트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등 부정 약물 사용을 막기 위해 부심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 비리 실태가 드러난 이상 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정부의 뒤늦은 ‘반성’=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체력시험에 약물을 복용하고 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듣고 도핑테스트 도입을 내부적으로 논의했다”면서 “한국도핑방지위원회 등에 도핑테스트 방법을 물었지만 이를 시행할 수 있는 마땅한 민간 검사기구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약물 비리 소지가 있어서 이미 1차 시험 합격자들에게는 체력시험 전 부정 약물을 복용하면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음을 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소방학교 관계자도 “스테로이드 등 약물을 복용하는 수험생이 있는데 도핑테스트를 왜 안 하는지 묻는 응시자들이 있어 부정 약물 사용 문제를 알고 있었다”며 “지난해 12월에 이미 이런 사실을 소방방재청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는 일반인을 대상으론 도핑테스트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소변검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란 얘기가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거론돼 왔다”고 말했다.

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은 일단 연구용역을 통해 약물 비리 실태를 조사한 뒤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키로 했다. 특히 소방방재청은 채용 시험에서 체력시험 비중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중앙소방학교 관계자는 “현재 총점의 25%를 차지하는 체력시험 비중을 낮춰 당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소방공무원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적정 체력 기준을 설정해 이를 통과하면 합격시키는 등의 제도 변화도 연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경찰공무원의 경우 2011년 체력시험 비중을 10%에서 25%로 올린 상황이어서 당장 이를 낮추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경찰청이 소방방재청과 달리 내년 경찰공무원 시험에서 선별적 도핑테스트 도입 방안을 적극 검토키로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학은 여전히 속수무책=반면 대학들은 체대 수험생의 부정 약물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육부 차원의 지침이 아직 없어 대학 자체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아직 본격적인 논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양대 체육학과 관계자는 “요즘 약물의 효과가 좋아지다 보니 몇몇 애들이 부정 약물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대개는 병원에 가서 (거짓으로) 아픈 부위를 얘기하고 받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핑테스트 전면 도입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체대 진학에 관심 있는 수험생들은 부상을 달고 살기에 도핑테스트를 하면 60%는 부정 약물이 검출될 수 있다”며 “부상한 수험생에게는 입시학원 등에서도 도핑 소지가 있는 약물 치료를 권유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우 형평성 논란이 당연히 일겠지만 결국엔 의사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측도 “대학 입시에서는 도핑테스트도 어려워 약물 비리를 해결하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나름대로 대응 방안을 생각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체육대 교학처 관계자는 “경기 입상 실적으로 선발되는 체육 특기자는 이미 대회에서 도핑테스트를 받는다”며 “문제는 기본 체력시험을 보는 일반전형인데, 일반전형은 수능 성적 위주로 선발해 아직은 수험생 도핑테스트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통일된 정부 기준 요구=정부 기관과 대학들은 모두 통일된 정부 기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도핑 금지 약물이 워낙 많은 데다 감기약 진통제 등에도 관련 성분이 포함돼 있어 정부가 나서서 명확한 기준을 내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스테로이드 같은 건 감기약이나 한약에도 들어 있다는데 이런 건 어떻게 할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소방중앙학교 측도 “운동선수들은 도핑테스트 결과에 수용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데 일반인에 대해선 그런 규정도 없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소방·교육 공무원은 비슷한 체력시험을 치러 중복지원자도 많다”며 “기관 간 협의를 통해 포괄적 기준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교육부에서 지침을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연세대 입학처 관계자는 “일선 대학에서는 도핑테스트를 하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교육부 등 정부 차원에서 기준을 세워줘야 한다”고 했다. 경희대 교학처 관계자도 “국가가 기준 등을 공인해주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도핑테스트를 해도 공정성 문제가 나올 것”이라며 “대학들이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요진 전수민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