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호철] 말랄라 신드롬

입력 2013-10-30 18:20


이번에도 예상 밖이었다. 지난 11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선정됐다.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파키스탄의 16세 여성교육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탈락된 것도 의외였지만, 2년 연속 개인이 아닌 단체에 수상의 영예가 돌아간 것도 한몫했다. OPCW란 이름도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했을 것이다.

노벨상위원회는 OPCW가 시리아 화학무기를 없애려는 광범위한 노력을 했고, 군비축소란 알프레드 노벨의 의지를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아직 이 기구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북한 등에 대해 압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논란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논란

OPCW가 세계 평화에 기여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단체에 주어진 것도 과거 사례를 보면 크게 책잡힐 일은 아닌 듯하다. 개인에게 주는 것이 원칙인 다른 노벨상과 달리 평화상은 단체에도 수여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까지 수여된 125차례 가운데 무려 25차례가 단체나 기구에 돌아갔다. 국제법연구소(IoIL), 국제평화국(IPB),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국제앰네스티(AI), 국경없는의사회(MSF) 등이 주요 수상자다.

하지만 노벨상위원회가 정치 논리에 휩쓸리고 있다는 지적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갈 법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9년 취임 9개월 만에 다자외교와 핵무기 감축 노력 등의 공로로 수상했고, 중동지역에 갈등을 조장했다는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상을 받았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평화상을 받은 이후 베트남전이 확전됐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1년 선정한 ‘논란이 많았던 노벨상 수상자 톱10’ 중 7명이 평화상 수상자였던 것을 보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말랄라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주목받았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2009년 11세 때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여자아이의 학교 등교를 금지하자 이에 반대하는 인권운동을 벌이며 탈레반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2012년 10월 탈레반으로부터 머리에 총격을 당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위협에 굴하지 않고 여성교육 확대를 위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하다. 지난 4월에는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말랄라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다. 세계가 말랄라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됐고 작은 소녀의 영향력이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 자서전 출간 등을 계기로 미국을 찾은 말랄라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못지않은 환대를 받았다. 말랄라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보도되고 방송 출연도 잇따랐다.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드론(무인항공기) 공습에 대해 따끔한 조언도 했다.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만났다.

선정 과정 투명하게 공개해야

노벨상 선정은 노벨상위원회의 몫이다. 노벨상 규정에 따르면 최소한 50년간은 심사 과정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심사 기준의 모호함과 선정 과정의 비밀주의로 인해 노벨상위원회는 수시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노벨상이 명실상부하게 세계인의 상이 되려면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 설득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더 늦으면 노벨상의 권위와 명성은 끝없는 추락을 맛볼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노벨상 설립자의 뜻은 아닐 게다.

남호철 국제부장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