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호철]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창립을 맞아
입력 2013-10-30 18:20
10월 14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가한 120여개 국가 및 국제기구 대표 400여명은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출범과 함께 사무처를 한국에 두기로 결정했다.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에 이어 두 번째 쾌거를 이룬 셈이다.
우리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그동안 민주화 이행과정에 있는 개도국에 대해 선거참관, 법제지원, 연수단 유치와 교육, 선거장비 지원 등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선거제도를 전수해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서울포럼에서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창설을 제안하고 그동안 실무단 회의를 주도해 송도에 사무처를 유치하기로 하고 창립총회를 개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경제성장에 매진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0달러 미만의 세계 최빈국에서 2만5000달러에 이르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한국 성장모델은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개도국들의 성장 교과서가 되고 있다. 서구의 선진국들이 한 세기에 걸쳐 달성한 경제성장을 불과 수십년 만에 따라잡은 압축성장의 신화가 된 것이다.
압축성장의 기적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향한 희생과 고통, 굴복하지 않는 열정으로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성취라는 또 하나의 신화를 이루었다. 20세기 후반 우리나라는 희생과 고통을 피할 수 없었지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이다. 우리의 성장과 민주화 경험을 전 세계 개도국들과 공유하고 전수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인류에 공헌하는 일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이런 점에서 중앙선관위가 민주화를 향한 힘든 여정에 있는 개도국들에 우리의 선거제도와 기술을 지속적으로 전수해온 것은 매우 가치 있는 공헌이라 할 수 있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가 창설되고 사무처가 한국에 있다는 것은 민주화의 신화를 전 세계에 알리고 공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세계선거기관협의회 창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국제기구의 국내 유치를 넘어 기구 창설을 국제사회에 제안·설득·조정하면서 그 과정을 주도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점이다. 창설 과정에서 리비아 예멘 등 후발 민주국가 대표들은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이행의 모범 국가로 거론하며 지지를 보냈다. 이것은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 드문 사례이며, 작은 나라의 한계를 지닌 대한민국으로서는 연성권력(soft power)의 증진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는 선진 정치선거제도 연구, 개도국 민주화 지원, 민주선거에 대한 국제적 기준 확립 등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가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우리나라의 가치와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하는 한편, 아직도 민주화를 위해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많은 개도국들을 지원해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진정한 국제기구로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세계선거기관협의회의 활동과 사무처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세계 민주주의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제기구로서의 법적능력을 부여하고, 협의회의 활동과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적극 지원하는 등 사무처 유치에 따른 후속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호철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