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값에 先物계좌 빌려드려요” 믿었다간 피눈물

입력 2013-10-30 17:58 수정 2013-10-30 22:57


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 6월 초 ‘저렴한 수수료로 선물계좌를 빌려 준다’는 광고 이메일을 받았다. 10년 넘게 시중 대형 증권사에서 주식·선물·옵션 등을 높은 수수료를 내고 거래해 온 터라 이 회사의 ‘낮은 수수료’가 매력적이었다.

A씨는 거액을 대출받으면서까지 투자했지만 두 달 후 이 업체가 전산조작을 일삼는 가짜 선물업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A씨는 뒤늦게 손실금 2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직접 찾아가봤지만 허사였다.

인터넷상에서 불법 금융투자업체가 활개치고 있다. 네이버·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정식업체인 것처럼 광고를 해 투자금을 모아 빼돌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8월 12일부터 지난 11일까지 두 달 동안 71만여개 선물계좌를 점검한 결과 총 649개의 불법 금융투자업체 혐의계좌를 적발했다고 30일 밝혔다.

금감원이 지난해 7월 이후 찾아낸 불법 금융투자업체 혐의 계좌는 1948개에 이른다. 이 중 90%는 무인가 투자중개업이다.

불법 금융투자업체들은 ‘실거래 계좌 대여업체’를 가장해 투자금을 빼돌리고 있었다. 코스피200지수 등 선물거래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증거금이 납입된 선물계좌를 빌려줘 거래를 직접 할 수 있도록 해 투자자들을 속였다.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체 개발한 홈트레이딩시스템(HTS)까지 제공했다. 일반적으로 증권·선물사를 통해 거래하면 계약당 1500만원 이상의 기본 예탁금이 필요하지만 이들 업체들은 50만원 정도의 소액으로도 거래가 가능하다고 투자자들을 유인했다.

문제는 이들 업체가 최근 대대적 인터넷 광고를 하면서 오히려 몸집을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포털 검색광고와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에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투자자를 대거 모집하고 있다. 심지어 경찰이 수사에 나서더라도 오히려 신규 사이트를 더 많이 개설하는 공격적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취급해 온 선물·옵션 상품 외에도 주식·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금감원은 이에 불법 금융투자업체 계좌를 쉽게 적발할 수 있도록 증권사와 선물사의 전산시스템 개발을 직접 추진하기로 했다. 증권사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관리실태도 주기적으로 점검해 불법 업체들의 이용을 막을 계획이다. 아울러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업계와 공동으로 선물계좌에 대한 자율 점검도 강화한다.

금감원은 선물·옵션 등 금융파생상품 투자자들에게는 반드시 제도권 증권·선물회사의 계좌를 이용할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법업체를 통해 피해를 입으면 금융분쟁조정절차에 따라 구제 받을 수 없다”며 “거래 전에 반드시 해당 업체가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았거나 금융당국에 정식으로 등록된 업체인지 금감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