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폰 잡은 명배우들… 명감독 나올까
입력 2013-10-30 17:15
지난 2월 24일(현지시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 할리우드 스타가 대거 참석한 이날 시상식에서 주인공이 된 인물은 배우 벤 애플렉이었다. 특이한 건 그가 연기자가 아닌 감독 신분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는 점이다. 애플렉은 연출작 ‘아르고’로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작품상 등 3개 부문을 휩쓸었다.
할리우드에선 이처럼 배우에서 감독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인물이 여럿이다. 우디 앨런, 클린트 이스트우드, 멜 깁슨, 조지 클루니…. 이들은 촬영장에서 몸소 익힌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계에도 배우 출신 감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배우, 메가폰을 잡다=올가을 극장가엔 스타 배우 두 명이 각각 연출한 영화가 나란히 상영 중이다. 충무로의 ‘대세’ 하정우가 만든 ‘롤러코스터’, 베테랑 연기자 박중훈이 감독한 ‘톱스타’가 그것이다. 두 사람은 연출 데뷔작인 이들 작품을 통해 관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외에도 최근 7∼8년간 영화감독에 도전장을 내민 스타는 여러 명이다. 특히 방은진은 배우 출신 감독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그는 ‘오로라공주’(2005)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 선보인 ‘용의자X’는 100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 6월 개봉한 배우 유지태의 첫 장편 연출작 ‘마이 라띠마’ 역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프랑스에서 열린 제15회 도빌아시아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배우 출신 감독 중엔 방은진과 유지태가 돋보인다. 특히 유지태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자신의 색깔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들 외에 신성일이나 고(故) 최무룡 등 왕년의 톱스타들도 과거 영화 연출에 도전했다. 배우는 아니지만 심형래 이경규 등 개그맨들 역시 수차례 자신의 영화를 선보인 적 있다.
그렇다면 많은 연기자가 이처럼 영화감독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은 영화가 갖는 장르적 특성에서 유추가 가능하다. 사람들은 흔히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 부른다. 감독이 촬영장을 진두지휘하며 막강한 권한을 쥐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작가의 파워가 센 드라마 시장과는 다르다.
최근 만난 박중훈은 영화감독을 이 같이 정의했다. “자신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게 배우의 일이라면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직업이다.” 연기가 좋아 배우의 길에 뛰어들었지만 영화판에 오래 있다보면 ‘나의 목소리’를 내는 작업도 해보고 싶어진다는 의미로 들렸다.
◇배우에서 감독으로…이들의 성과는?=배우 출신 감독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은 많다. 우선 연기 내공이 있으니 출연진에게 보다 섬세한 연기를 지도 및 주문할 수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만큼 TV나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영화를 홍보하기도 수월하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배우 출신 감독은 여타 신인 감독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에서 감독 데뷔를 한다. 인맥을 바탕으로 좋은 배우, 뛰어난 스태프를 캐스팅하기도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배우 출신 감독 대다수는 흥행 성적 등에 있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미흡한 연출력과 조악한 내용으로 혹평을 받은 사례도 많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배우 출신 감독이 유념해야 할 사항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꼽았다.
“봉준호 최동훈 추창민 등 현재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 중 상당수는 대학에서 영화가 아닌 사회학 등을 전공했다. 테크닉을 배우기 전에 세상을 보는 시각을 먼저 키운 셈이다. 배우 중 상당수는 화려한 스타의 삶을 살았다. 연기를 오래 했다는 이유로 ‘나는 영화를 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