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할머니의 램프
입력 2013-10-30 17:40
할머니가 램프를 사러 갔는데 이것저것 다 봐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어떤 것은 너무 커서 다른 장식품을 가리고 어떤 것은 너무 작아서 낮은 곳에 있는 작은 탁자를 비추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이처럼 한 방에서 오래 살면 평생 모은 살림과 장식품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램프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이 같은 현상이 바로 ‘할머니의 램프’로, 미국 스탠퍼드 의대 정신과 교수 키스 험프리스가 처음 사용했다.
인생을 설계하느라 수십 년을 혼자 보내고 나면 거주지나 취미, 관심사 등에 맞는 짝을 구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럴 경우에 사용하는 정신의학적 용어다. 결혼이 늦으면 늦어질수록 이미 형성된 자신의 모든 조건을 흩뜨리지 않고 마음에 딱 맞는 배필을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강조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남녀 모두 혼인 연령이 예전보다 늦어지는 것은 미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뉴스위크 최근호는 이 같은 미국의 만혼 풍토를 전하며 가능하면 결혼을 빨리 할 것을 조언했다. 결혼을 한 사람의 행복지수가 독신자나 동거자보다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도 함께 소개했다. 결혼한 미국 남자의 52%와 여자의 47%가 아주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우리의 경우도 미국과 비슷하다. 통계청의 인구동향자료를 보면 초혼 연령은 1990년 남자 27.8세, 여자 24.8세에서 지난해 남자 32.1세, 여자 29.4세로 높아졌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2009년 이후부터 남성을 앞질렀고 지난해에는 74.3%였다. 여성의 경제력 향상과 함께 결혼 적령기의 20대 여성 수가 남성보다 적다 보니 연상녀·연하남 부부도 10년 전 11.6%에서 지난해 15.6%로 무려 4% 포인트나 높아졌다.
갈수록 높아지는 초혼연령은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 전체로 봐서도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결혼을 늦출 경우 아기가 선천적 결함이 생길 위험도 높아지고 아기와 노부모 사이 갈등을 겪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신생아가 줄어들어 노동력 공급시장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정부의 연금부담도 늘어난다.
문제는 인륜지대사인 결혼이 누가 강요한다고 갑자기 많이 늘어나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또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기 싫어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항변도 만만찮을 것이다. 만혼이 여러 가지 점에서 좋은 것이 아니란 사실에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도록 노력해보는 수밖에 없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