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중국 여유법, 失보다 得
입력 2013-10-30 17:40
싸구려 단체 해외여행을 금지한 중국의 여유법(旅遊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중국의 여유법 시행으로 현지에서 판매되는 한국여행상품의 가격이 50∼70% 뛰어오르면서 한국으로 물밀듯 들어오던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발길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다. 하나투어의 경우 중국인 관광객을 한 달 평균 1만명 정도 유치했지만 이 달에는 60%나 급감했다고 한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치 시장의 70%를 차지하면서 싸구려 단체여행을 주도해온 화교 여행사들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아 파산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중국의 여유법 시행으로 올해 방한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당초 예상보다 10만∼15만명 줄어든 450만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중국의 여유법은 쇼핑 관광, 팁 관광, 옵션 관광 등 저질 해외관광으로 인한 자국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행사들은 그동안 값싼 여행상품으로 중국 단체관광객을 유치한 뒤 쇼핑 수수료나 옵션관광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냈다. 중국의 대형 송출업체가 저가로 관광객을 유치한 뒤 한국의 랜드사에 넘겨주는 ‘갑의 횡포’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한국 랜드사의 출혈경쟁도 쇼핑관광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일부 랜드사는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 송출업체로부터 여행경비를 아예 한 푼도 받지 않는 ‘제로 투어 피(Zero tour fee)’를 감수했다. 심지어 1인당 20만원을 주고 중국인 관광객을 사오는 ‘마이너스 투어 피(Minus tour fee)’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쇼핑 강요와 저질 숙식으로 한국관광의 이미지가 실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중국의 여유법 시행은 단기적으로는 방한 관광객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관광시장의 질서가 정착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체부는 여유법 시행을 계기로 싸구려 관광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돼온 ‘외국인 전용 기념품 판매점’ 제도를 올해 안에 폐지하고 자율 경쟁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또 중국어 가이드를 확충하고 심사를 통해 불량 중국 전담여행사를 퇴출하기로 했다.
국내 여행사들도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모두투어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필수 코스였던 쇼핑센터 방문을 취소하고 대신 경복궁과 청계천 등을 여유롭게 돌아보는 관광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투어는 관광일정에 한류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관광 상품을 출시해 호평을 받고 있지만 중국인 단체관광객 급감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중 중국 여유법의 적용을 받는 단체관광객은 지난해 기준 33.4%로 개별관광객(FIT) 63.4%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 중국의 해외여행객 증가와 여행문화 성숙으로 여유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개별관광객 비중이 해마다 늘어난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자체는 이제 중국인 개별관광객 유치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어 안내판과 홍보물을 확대하는 등 중국인 개별관광객이 언어소통의 벽을 넘어 자유롭고 마음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관광환경 개선에 힘써야 한다. 통역과 번역, 그리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중국인 관광객의 86.2%가 서울지역에 편중된 현상을 해소하고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인천공항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편도 확충해야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은련카드로 전국의 교통망을 이용하는 교통요금 직불체제를 도입하면 개별여행객의 지방관광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의 여유법은 실(失)보다 득(得)이 많은 제도다. 쇼핑관광으로 대표되는 싸구려관광 근절을 계기로 국내 관광시장의 질서가 하루빨리 정착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