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도청 폭로로 美‘위선 외교’ 종말 고했다
입력 2013-10-29 18:28
미 중앙정보국(CIA) 전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 등의 폭로로 미국의 ‘위선 외교’가 종언을 고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조지워싱턴대 정치학과 헨리 파렐, 마사 피네모어 교수는 28일(현지시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기고한 ‘위선의 종말(The End of Hypocrisy)’에서 미 정부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수십만건의 미 외교전문을 위키리크스에 넘겨준 브래들리 매닝 이병과 국가안보국(NSA)의 미국 시민 및 외국 기관·정치인에 대한 광범위한 통화·인터넷 정보 사찰을 폭로한 스노든이 미국 안보에 가하는 심대한 위협은 폭로된 새로운 정보보다는 미국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고 왜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지가 문서로 확인된 데 있다는 것이다.
두 교수에 따르면 위선은 미국 소프트파워(다른 나라가 특정 국가의 정당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의 핵심이다. 현재 세계질서는 법치와 민주주의, 자유무역주의 등에 대한 미국의 약속(commitment)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이 체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위선이라는 ‘윤활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질서가 정당성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미 정부는 정기적으로 ‘미국이 무력을 통해서만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핵심 약속을 홍보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번 폭로로 미국의 말과 실제 행동과의 간극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다른 나라들이 미국 주도의 질서가 근본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위험성을 증폭시켰다는 얘기다.
두 교수는 그동안 미국의 위선적 행태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다른 국가들이 이를 못 본 체하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위선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해 미국 정부가 ‘이기적인 위치’로 돌아설 경우 세계질서가 위험에 처하게 되며, 미국 또한 자국의 행동 불일치를 비판한 나라들에 무역관계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다른 직접적 보복을 통해 징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고문은 현재와 같은 기술 환경에서 국가기밀을 다루는 수천명의 보안요원들이 어떤 식으로든 기밀을 유출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더 이상 ‘이중 기준’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나 중국처럼 ‘공공선’의 측면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 비춰 현실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보통 강대국처럼 되거나 어렵지만 공표한 국제질서와 가치에 맞게 행동과 말을 일치시키는 불편한 선택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두 교수는 아직 미 정부는 국가안보를 훼손하지 않고도 위선적인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며 두 대안 중 후자를 채택할 것을 권고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