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문 이슈·반복된 폭로-반박 1년… 국민은 지쳐간다

입력 2013-10-30 04:59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을 둘러싼 여야 정쟁이 날로 확산되고 복잡해지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폭로와 반박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면서 이슈가 사그라질 만하면 다시 불붙는 일이 1년 가까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정쟁이 장기화되고 광범위해지면서 국민적 피로도가 커진 것은 물론이고 이슈를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여야가 국민을 그만 헷갈리게 하고 정쟁을 중단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계속되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터진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 댓글 의혹은 국정원 요원들이 대규모로 트위터 글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이 진화하고 있다.

지난 18일 윤석열 여주지청장(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이끈 검찰 특별수사팀은 트위터 글 5만5689건을 추가 증거로 제시하며 법원에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제출했고, 민주당이 이틀 뒤 구체적인 내용을 입수해 언론에 폭로했다. 5만여건의 트위터 글 중에는 민주당 문재인 의원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을 비방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파장은 컸다.

민주당은 국정원이 노골적이고 광범위하게 대선에 개입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 의원이 지난 23일 “지난 대선이 불공정했고 박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고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부정 선거 및 대선 불복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검찰이 추가 증거로 제시한 트위터 글 가운데 2500∼3000건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자체 조사 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한 기사를 단순 링크한 것이 ‘안철수 반대’로 분류된 식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비판한 내용이 ‘박근혜 지지’로 분류된 경우도 있다는 반박이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29일 “5만5000여건 트위터 글 가운데 1만5000여건이 국정원 직원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글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상반기에 민주당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의 핵심으로 제기했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논란은 검찰 수사 결과 ‘대화록 미이관’ 논란으로 변질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검찰 수사 외압 의혹=의혹에 기름을 부은 것은 검찰 수사 외압 논란이다. 검찰 수뇌부는 공소장 변경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며 윤 지청장을 수사팀장에서 해임시켰고, 이에 윤 지청장은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국정원 사건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며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을 외압 주체로 지목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민주당은 윤 지청장을 ‘의로운 검사’로 지칭하며 “특임검사로 임명해 수사를 맡기라”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윤 지청장을 ‘정치 검사’라고 비판하며 ‘보고 누락 및 항명 사건’으로 규정짓고 있다. 검찰은 이정회 수원지검 형사1부장을 후임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했으나 향후 민주당이 새 수사팀의 수사 결과를 신뢰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새 수사팀은 기존에 제출된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를 철회하지 않기로 했으며 서울중앙지법은 30일 공소장 변경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 글 의혹=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글 의혹은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새롭게 불거졌다. 국방부는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민주화 이후 첫 군 선거개입 사건으로 확산되자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민주당은 사이버사령부 소속 요원 중 최소 10여명이 인터넷 사이트에 댓글을 달고 트위터 글을 퍼날랐다는 주장이다. 사이버사령부가 국정원 및 십알단(십자군 알바단)과 연계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은 미국 일본 동남아 등 해외 교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정치 글을 작성했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된다(국민일보 10월 26일자 4면 참조). 지난 대선에서 도입된 재외국민 선거를 겨냥한 정치개입 활동이었다는 의심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정치, 선거 글은 극소수이며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글 작성 사실을 인정한 군무원 J씨의 트위터 글 3207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정치·선거 관련 게시글은 246건(7.7%)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게시글 건수의 경우 새누리당이 “한강에 물 한 바가지”, 민주당이 “우물에 독극물 한 바가지”라고 표현할 만큼 시각 차이가 크다.

◇국가보훈처도 대선개입 의혹=국가보훈처는 대선을 앞두고 학생·공무원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안보강연(나라사랑 교육)을 실시하면서 민주당 등 야당을 좌익·종북으로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훈처가 배포한 DVD에는 야당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DVD 제작 예산을 협찬한 곳이 국정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28일 국감장에서 국정원 연계 의혹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고, 민주당은 보훈처의 행위가 ‘오프라인 댓글’과 다름없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엄기영 임성수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