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배송” 유혹… 부정 약물, 인터넷에 넘친다
입력 2013-10-29 17:55 수정 2013-10-29 22:35
공무원 체력시험과 체대 입시 성적 조작에 이용되는 부정 약물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별 제재 없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입소문이 난 병원을 통해 얻거나 온라인에서 직접 거래하는 경우도 많았다. 29일 국민일보 취재 결과 시험에 악용되는 약물과 보충제에는 대부분 스테로이드 등 공급·유통이 제한된 성분이 들어 있었다.
◇식약처 단속 대상 약물 판쳐=수험생들이 근력 등을 높이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약물은 스테로이드 제제가 포함된 경구제(알약)다. 주사제보다 복용이 간편하고 사용량 조절이 쉽기 때문이다. 할로테스트, 아나바 등 현재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이런 약물의 종류는 100가지가 넘는다. 대부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한 성분이 잔뜩 들어 있다.
스테로이드 알약의 하나인 ‘GP 할로테스트’의 주성분은 플루옥시메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 동화작용제다. 짧은 시간에 근육을 빠르게 성장시켜 체력 증진 효과가 크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는 경기 종목을 막론하고 운동선수들이 이를 복용하는 걸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메탄디논, 메칠테스토스테론, 스타노졸롤, 시피온산테스토스테론, 에난트산테스토스테론, 옥산드롤론, 옥시메톨론 등이 들어 있는 다른 약물들도 마찬가지다. 수험생들이 흔히 ‘보충제’로 인식하고 남용하는 약물 중에도 이런 성분이 든 경우가 많다. 스테로이드 제제가 ‘무통주사’ ‘파워주사’ ‘진통제’ 등으로 이름만 바뀐 채 사용되기도 한다.
효과가 좋은 만큼 중독 위험도 높다. 수험생에게 주사를 잘 놔주기로 소문난 한 병원의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눈앞의 시험이 중요한 체대 입시나 공무원 시험 수험생들이 아픈 데가 없어도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고 간다”며 “스테로이드는 약효가 떨어지면 통증이 다시 찾아오기 때문에 다시 맞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일단 한번 체력 상승효과를 본 수험생들이 다시 약물을 찾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도서·산간 지역을 제외하고 처방전 없이 스테로이드 약물을 유통하면 약사법 위반이다. 그러나 문제는 외국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브로커들이다. 이들은 국내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판매망을 넓혀 간다. 해외 업자로부터 약물을 사들여 국내에서 2∼3배 웃돈을 붙여 팔며 ‘하루 만에 배송이 가능하다’는 식의 온라인 광고로 국내 수험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 ‘스테로이드’를 검색하면 해외 구매를 대행해 주는 쇼핑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쇼핑몰은 통관에 ‘문제가 없다’고 광고하며 버젓이 영업한다.
◇곳곳에 단속 사각지대=병원이나 약국이 특별한 질병이 없는 환자에게 스테로이드 등의 성분이 든 약물을 과다 처방하면 최대 ‘지정 취소’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수험생들이 “부상을 당했다” “근육통이 있다” 등의 핑계를 대 의사가 스테로이드 약물을 처방하거나 병원 측에서 아예 허위 처방전을 발급하는 경우는 실질적으로 일일이 적발하기 어렵다. 단순히 오남용 금지 약물을 지정하고 불법 처방 병원을 단속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불법 약물 구매자를 처벌하는 규정도 없다 보니 학원가에서는 약물 구입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장 B씨는 “주로 급하게 시험 준비에 착수한 사람들이 약물을 찾는다”면서 “내가 가르쳤던 학생 10명 중 1명꼴로 약물에 관한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B씨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필기시험 합격 후 시행되는 소변검사에서 걸릴 가능성이 있지만 필기시험 합격 통보와 실기시험 사이에 2∼3주 공백이 있어 이 시기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체력학원장 C씨는 “약물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서 “유도 전공 체대 입시의 경우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약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수험생들은 ‘일단 붙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나온다”며 “내가 가르친 학생 중 3명이 약물을 복용하고 시험에 응시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고 전했다. D경찰학원 담당자 역시 “6년간 근무했는데 약물 주사를 맞고 시험장에 들어갔다는 학생을 2명 봤다”면서 “무통주사 형태로 맞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스포츠 트레이너는 “원래는 처방전 없이 스테로이드를 구할 수 없지만 병원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구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태원에 가면 된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덧붙였다.
한편 체대 입시 과정에 도핑테스트를 도입했다고 밝혔던 서울대는 29일 “실제로는 도핑테스트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왔다. 서울대 관계자는 “국민일보 취재팀에 도핑테스트를 도입했다고 밝혔던 것은 체육교육과 실무자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정부경 전수민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