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용신] 우아하게 가난해지기

입력 2013-10-29 17:44


이제 가난해질 일만 남았다. 나와 남편의 벌이는 점점 신통치 않을 것이고 부모님과 자식 위 아래로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일만 남았다. 쨍하고 해뜰 날이 있을 거라 희망했던 시절이 가장 쨍하게 해뜬 날이었음을 알게 되고 나니 이제는 더 쨍해질 날을 기대하기보다 기울어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나만의 얘기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가난해질 가능성이 점점 많다는 점에서 다가올 가난에 우아하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법을 지금부터 익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 언론인 폰 쇤부르크가 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는 책을 보면 아무리 통장이 적자 상태이고 집이 협소하더라도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식사할 기회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음식에 대한 찬사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누어지도록 음식 준비에 너무 열정을 쏟지 말라는 것. 또 준비하는 사람이 잘하고 편한 음식을 매번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하고 있었다.

이 글을 읽고 매번 내가 가장 잘 구워내는 호두파이 한 조각에 커피 한 잔 내려 가볍게 티타임을 주선했던 일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초대해 삼겹살을 구울 때 된장찌개를 준비하지 않은 것도 잘했다 싶었다. 난 된장찌개까지 준비할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초대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므로. 상다리 부러지게 한상 차릴 마음 아니면 아예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일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는 문화는 점점 더 가난해질 우리에게 친구와 이웃을 앗아간다. 집에 들이는 돈이나 집이 위치한 동네가 아니라 친구들이 모여들어 아름답고 부유한 집을 꿈꾸는 일이 가난한 날에 대비한 우리의 자세다.

요즘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운동이다. 가까운 곳에 등산을 하거나 조깅을 하더라도 갖춰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럴 땐 스포츠 기구와 패션에 들이는 비용이 적을수록 취향에 대한 자신감을 증명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옷, 액세서리, 인테리어, 또는 어떤 취미활동에서도 취향을 저하시키는 단연 최대의 공신은 언제나 돈이므로.

소박한 삶은 즐거움과 기쁨을 거부하며 궁핍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속될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것들을 분별하는 삶이다. 오히려 경제적인 쇠퇴가 우리의 생활양식을 더 세련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두 팔 벌려 맞을 작정이다. 궁색하지 않고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을 고민하면서.

김용신(C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