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동현] 2013년 노벨경제학상이 주는 의미
입력 2013-10-29 18:44
지난 14일 스웨덴 한림원은 자산가격의 실증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유진 파마, 로버트 실러, 라스 한센을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번 결정은 학계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파마와 실러의 경우 지난 1974년의 뮈르달과 하이에크보다 더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파마는 ‘효율적 시장의 가설’로 유명한 학자다. 효율적 시장이란 모든 정보가 이미 가격에 반영되어 있어 이를 이용해 시장에 비해 초과수익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모든 정보는 투자에 있어 무용지물이란 얘기다. 따라서 시장가격은 항상 펀더멘털의 가치와 동일하며 잘못된 가격이 있을 수 없고 저평가나 고평가된 종목을 찾으려는 노력은 헛수고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그는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추구하는 액티브 펀드를 지양하고 패시브형 투자를 추천했다. 실제 파마는 동료인 프렌치 교수와 ‘Dimensional Fund Advisors’란 인덱스형 투자자문사를 설립해 그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탄생 뒤에는 파마의 논리가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실러 교수는 반대로 시장은 비효율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가 제시한 여러 증거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변동성 퍼즐이다. 주가는 미래 배당 흐름의 기댓값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값인데 배당의 변동성에 비해 주가의 변동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주가 움직임은 배당과 같은 펀더멘털뿐 아니라 심리적 요인 같은 비펀더멘털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행동재무학을 주창했다.
특히 실러는 “경제학에서 가장 엉터리가 효율적 시장의 가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고 2000년의 IT 버블과 2000년대 중반의 부동산 버블을 예로 들었다. 이에 대해 파마는 “버블의 정의가 무언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또 실러의 영향을 받은 라코니샥, 슐라이퍼와 비쉬니가 행동학파적 견지에서 설립한 액티브형 헤지펀드인 LSV펀드의 투자 성과가 부진하자 사람의 심리를 예측해서 초과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시장이 효율적이란 증거라고 반격하기도 했다.
시장의 효율성과 관련된 논쟁은 고전학파와 케인지언 간의 논쟁과 유사하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논리와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은 효율적이니 정부는 시장에 간섭하지 말라는 고전학파의 논리는 궤를 같이하며 두 이론 모두 시카고학파에 속한다. 반면 시장의 비효율성과 시장은 불완전하니 시장 실패에 대비해 정부가 간섭을 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궤를 같이하며 하버드 대학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두 학파는 지난 2000년 양측에서 대표학자들이 참석해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치열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필자 역시 여기 참여해 이틀간 논쟁을 벌인 기억이 있다. 두 학파의 논쟁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관건은 자산가격이 펀더멘털 가치와 동일한지 여부인데 펀더멘털 가치를 정확히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의 효율성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탈규제주의와 시장의 비효율성을 주장하는 규제주의는 계속 대립하면서 그때그때의 경제 상황에 따라 상대적 우위가 달라질 것이다.
1919년 아서 에딩턴 경이 남반구의 개기일식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실증 증거를 제시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옳다. 내 이론은 아름답고 따라서 옳을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물리학과 달리 경제학에서는 이런 절대적 ‘옮음’은 있을 수 없다. 물리학이 신의 영역이라면 경제학은 불완전한 인간의 영역이기에.
두 학파의 대립은 학문적 발전을 가져오지만 이러한 논리를 정치적 장으로 확대해 아전인수격으로 싸우는 정치인들이야말로 이 대립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피해자다. 어찌 보면 이번 한림원의 결정은 두 학자에게 상을 수여한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해 당파적 싸움을 벌이는 정치인들에게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말라는 충고를 던진 것이 아닐까.
안동현(서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