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대통령 비서실장

입력 2013-10-29 18:44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은 사실상의 권력 2인자로 통한다. 장관급 대우를 받지만 대통령의 스타일이나 본인의 집권세력 내 위상에 따라서는 부총리나 총리 이상의 파워를 갖는다. 국가 정책과 고위직 인사에 깊숙이 관여해서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종종 드러나기도 했다.

박정희정부에서 5년10개월 재임한 이후락 실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행정부 정책과 인사뿐만 아니라 총선 때 집권당 공천까지 개입할 정도였다. 김정렴 실장도 9년3개월이나 대통령 곁을 지킨 실세였다.

전두환정부에서는 이범석 함병춘 강경식 이규호 박영수 실장 등이 모두 실무형이란 평가를 받았다. 허화평 정무수석 같은 정권 실세에게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노태우정부에서는 노재봉 실장의 파워가 컸다. 노 대통령이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의 대권행을 견제하기 위해 총리로 전격 발탁하기도 했다.

김영삼정부의 박관용 실장도 실세였다. 새 정부 초기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대중정부에서는 김중권 박지원 실장이 막강했다. 김 실장은 김 대통령의 기반이 약한 영남권을 사실상 대변했으며,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박 실장은 뛰어난 정치력을 바탕으로 주요 정책 조정과 각종 인사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문재인 실장의 무게가 두드러졌다. 과거 부산에서 노 대통령과 변호사 일을 함께했던 인연으로 정권 말기 명실상부한 실세로 분류됐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 비서실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이명박정부의 류우익 임태희 하금열 실장은 모두 실무형이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허태열 전 의원이 비서실 책임자로 임명되자 비서실장에게 힘을 싣지 않으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5개월여 만에 김기춘 실장이 등장하자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갑자기 그에게 힘이 쏠리면서 ‘왕 실장’이란 별명이 따라붙었다. 최근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후보로 경남 출신이 연이어 발탁되자 동향인 김 실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가 ‘인사위원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비서실장이 일정한 파워를 갖고 적극적으로 대통령을 모시는 건 나쁘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이 더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도록 눈과 귀를 넓히려는 노력이 항상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