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손자, 배워야 잘 키우죠” 할머니는 열공 중

입력 2013-10-29 17:13 수정 2013-10-29 23:00


예비 할머니 육아교실, 일동후디스 ‘마담클럽’ 가보니…

“하하∼” “호호∼” “엄마, 내 말이 맞지?” “정말 그렇구나!”

웃음소리 사이사이로 예비할머니와 예비 엄마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할머니로 불리기에는 억울할 만큼 젊은 예비 할머니들은 ‘손자를 잘 키우겠다’는 생각에 강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 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아직 엄마가 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예비 엄마들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강의에 열중했다.

서울 의주로 ‘리더스나인’ 서대문점에서 지난 23일 펼쳐진 일동후디스 주최 제11회 후디스맘 아카데미 ‘마담클럽’ 클래스의 모습이다. 마담클래스는 예비 할머니들을 위한 육아교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돌봐주는 ‘황혼육아’가 부쩍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맞벌이가구는 510만 가구이며, 이 중 절반 가까운 250만 가구가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다. 마담클럽을 주최하고 있는 일동후디스 행사기획팀 김양화씨도 “마담클럽은 5년 전 시작했는데 최근 이 클래스의 신청자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통계로 보는 서울 노인의 삶’에서 60대 노인들이 가장 희망하지 않는 노후생활로 ‘손자녀 양육’을 꼽았다는데, 이날 참가한 30명의 예비 할머니들의 얼굴은 밝았다. 이애호(58·서울 신정동)씨는 “시어머니도 안 계시고 딸은 직장을 다녀야 하니 당연히 내가 봐줘야 하지 않느냐”며 옆에 앉은 딸 장은실(31)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힘에 부치더라도 팔 걷고 나서는 것은 결국 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처가살이가 늘어나는 등 우리나라가 신모계(新母系)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더니 마담클럽에서도 그 징후가 뚜렷하게 보였다. 30쌍 중 시어머니와 참석한 커플은 단 1쌍. 며느리 이민지(27·서울 길동)씨와 함께 온 김선미(52·서울 둔촌동)씨는 “며느리가 직접 키우겠다고 해서 보조 역할을 할 생각”이라면서도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1부 ‘손자녀의 마음을 아는 할머니, 시대를 앞서가는 할머니’를 주제로 강의가 펼쳐졌다. 강사로 나선 부모교육전문가 전춘애 박사는 할머니들이 손자녀를 키울 때 도움이 되는 월령별 특성과 함께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생기길 수 있는 육아 갈등 해법을 알려 주었다. 전 박사는 “할머니와 엄마는 양육 스타일이 차이게 나게 마련이므로 기본원칙과 역할을 미리 합의하라”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되고 엄마는 안 된다고 하면 아이에게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육아 원칙을 세울 때 대립된다면 엄마 원칙을 따르라는 것이 전 박사의 조언. 살짝 언짢아하는 예비 할머니들에게 전 박사는 “손자는 내 자녀의 자식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전 박사는 예비 엄마들에게는 “할머니에게 12시간 이상 보게 해선 안된다. 할머니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피곤하면 그 영향이 아이에게 미친다”고 귀띔했다. 또 사례비도 꼭 챙겨드리라고 당부했다. 예비 할머니들에게는 “체력관리를 하시고, 모임이 있을 때는 아이 돌보미를 불러서라도 여가시간을 즐기시라”고 했다.

1부가 끝나고 엄마와 딸이 평소 하기 어려운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도 있었다. 20대 초반에 딸을 낳아서 청춘을 박탈당한 것 같았다는 엄영란(55·서울 암사동)씨는 “그 딸이 결혼해 임신을 하니 내가 비로소 진정한 엄마가 된 것 같다”면서 “우리 딸 사랑한다”고 외쳤다. 엄씨의 딸 김지니(32)씨가 울먹여 떠들썩하던 강의실은 순간 숙연해졌다. 임신 6개월인 지니씨는 “임신 초기에 하혈도 하고 힘들었을 때 엄마가 챙겨주신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며 “엄마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참가자들은 아이를 키우다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 하면 될 것이란 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이들의 손에는 선물이 가득 들려 있었다. 선물보따리보다 더 묵직한 육아 상식 보따리를 챙기게 돼선지 모두 싱글벙글이었다. 9개월짜리 손녀를 안고 참석했던 김선옥(58·서울 삼성동)씨는 “첫손녀 키울 때 애기가 무슨 감정이 있을까 싶어 강압적으로 키운 것 같다”면서 진작 이 강의를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할 정도였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